[임철순 칼럼] 청와대를 젊고 빠른 일터로

입력 2017-04-11 10:57 수정 2017-04-12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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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지금 청와대에 남은 사람들은 뭘 하고 있는 걸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된 뒤 한광옥 비서실장 등 대통령 보좌진은 일괄 사표를 냈다. 그러나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이를 모두 반려했다. 당시 국무총리비서실은 “현재 안보와 경제 등의 엄중한 상황을 고려해 한 치의 국정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긴급한 현안 업무를 마무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들이 떠남으로써 어떤 국정 공백이 생기고, 그들이 남아 있음으로써 어떤 긴급한 현안 업무가 마무리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보좌한다지만 그 기능은 총리실과 중복된다. 그들은 현재 청와대에 앉아서 TV나 보고 있거나, 편하지는 않지만 모처럼 휴가를 누리며 취직운동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걱정스러운 것은 대통령 기록물에 대한 삭제나 인멸, 왜곡, 분류 처리 잘못 등이다. 검찰과 특검 수사에서 한사코 압수수색을 거부해온 청와대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가장 궁금한 게 바로 이 대목이다. 청와대 비서실 근무경력이 있는 인사도 이 점을 걱정하면서 대통령이 파면되면 보좌진도 전원 물러나오는 게 맞는다는 견해를 밝혔다.

‘박근혜 청와대’는 정상 집무 시기에도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대통령을 보좌한다지만 바르고 옳은 방향을 잡지 못했고 세상의 여론과 조류를 정직하고 가감 없이 전달하는 데 실패했다. 소통과는 거리가 먼 박 전 대통령의 성향 탓이지만, 인물 구성이나 물리적 구조 자체가 원활한 보좌기능의 수행에 장애가 됐다.

19대 대선을 앞두고 후보자들이 청와대 개조나 개편을 언급하는 것은 이런 점에 비추어 당연한 일이다. 당선되면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청사로 옮기겠다고 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설계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권위적이고 봉건적인 구체제의 상징인 청와대는 시민 휴식공간으로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미국의 백악관처럼 비서동 중심의 집무실로 바꾸겠다고 말했다. 당내 경선에서 패했지만 안희정 충남지사는 청와대의 세종시 이전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초점은 장소 문제가 아니다. 터가 좋지 않아 대통령이 안 좋게 물러나거나 국정 운영이 어려웠던 것은 아니다. 굳이 새로운 시설을 마련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일을 하는 데 불편이 없는 청와대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 청와대는 일을 하는 곳이 아니라 의식과 행사의 공간이며 위엄과 권위 과시를 위한 시설이다. 비서실장이라는 보좌진의 우두머리가 대통령이 어디 있는지 모르고 1주일에 한 번도 대면하지 못하는데 무슨 일이든 제대로 되겠는가.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실이 다른 건물에 있다 보니 참모들이 대통령을 만나려면 차를 타고 다니는 구조부터 개선해야 한다.

청와대가 구중궁궐처럼 국민과 완전히 격리된 시설이어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의식과 행사, 대통령직과 국가의 권위를 생각하면 그런 공간은 유지해야 하며 존중해야 한다. 행사공간과 근무공간을 명확하게 분리하되 각각의 기능에 맞게 공간을 재배치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무조건 ‘작은 청와대’를 지향하는 것은 재고해야 할 일이다.

물리적 구조 개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적 구성 문제다. 박 전 대통령이 비서실장을 기용해온 첫 번째 조건은 70세 안팎의 오래된 인물이었다. 나이가 많거나 오래 활동했다고 다 낡은 인물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박 전 대통령의 경우 그런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세계는 빠르게 변하고 매사 신속 정확하게 대응해야 할 일이 국내외에 산적해 있다. 좀 더 젊고 유능하고 빠릿빠릿해 국민과 소통하는 데 원활한 인물을 비서실장으로 기용해 제대로 일을 하게 하라. 안철수 후보는 청와대에 청년수석실을 새로 만들겠다고 했는데, 그런 것이든 어떤 것이든 청와대가 좀 젊어지고 빨라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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