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비선실세' 최순실(61) 씨 측에 430억 원 상당의 뇌물을 건넨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 사건을 '정경유착 범죄'로 규정했다. 반면 이 부회장 측은 혐의를 모두 부인하며 "특검이 가공의 틀로 급조했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김진동 부장판사)는 7일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 등 삼성 전직 임원 5명에 대한 1차 공판을 진행했다.
박영수(65ㆍ사법연수원 10기) 특별검사는 이날 "최 씨가 대통령에게 정유라 승마 지원 등 경제적 지원을 요청하면, 대통령은 최 씨의 요청에 따라 이 부회장에게 뇌물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의 3차례 독대 과정에서 경영권 승계를 도와달라는 부정한 청탁을 하고 삼성 임직원을 시켜 430억 원대 뇌물을 건넸다고 보고 있다. 원활하게 경영권 승계를 하고자 했던 이 부회장과 최 씨, 박 전 대통령 사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특검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삼성생명 금융지주회사 전환 승인 등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박 전 대통령이 도와줬다고 주장했다. 박 특검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고질적이고 전형적인 정경유착 범죄"라고 강조했다.
양재식(52ㆍ21기) 특검보는 "삼성은 배후에 최 씨가 있다는 것을 알고 직접 접촉해 지원했다"며 이 사건의 중요성을 짚었다. 이어 "공무원인 박 전 대통령과 비공무원인 최 씨의 뇌물수수 의사가 합치됐다면 공범 관계가 성립한다"고 말했다. 그는 "며칠 전 최 씨는 법정에서 '삼성이 선의로 (돈을) 지원했다'고 주장했고, 이 부회장 등은 '어쩔 수 없이 지원했다'고 이야기 한다"며 "특검이 보기엔 이 부회장 등은 피해자가 아니라 최 씨 등과 같은 배를 탄 공범"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이 부회장 측은 "삼성의 지원은 문화융성과 체육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대통령의 요청에 따른 대가성 없는 지원"이라고 반박했다. 기업의 정상적인 사업활동이었을 뿐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는 무관하다는 취지다.
이 부회장의 변호인인 법무법인 태평양의 송우철(55ㆍ16기) 변호사는 부정한 청탁과 대가관계에 대한 합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특검의 논리를 "예단과 선입견에 기반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특검이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에서 부정한 청탁이 오갔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이를 확인할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모두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공소장에 논리적 비약이 심하다고도 비판했다. 이 부회장 측은 "특검이 아무런 근거 없이 대통령의 말을 왜곡하고 있다"며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승마지원을 요구했다고 직접인용 방식으로 기재하고 바로 뒤에서 이를 정유라에 대한 지원으로 둔갑시켰다"고 했다. 이 부회장의 생각을 특검이 자의적으로 추단했다고도 주장했다.
삼성의 미르ㆍK스포츠재단 출연금만 '뇌물'로 본 점에 대해서도 억울함을 표시했다. 송 변호사는 "삼성이 재단에 출연한 경위는 다른 대기업과 다를 바 없음에도 다른 기업은 피해자로, 삼성은 공여자로 규정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삼성물산 합병 찬성으로 국민연금이 손해를 봤다는 특검의 논리에 대해서는 "선동적인 주장"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은 자본시장법에 따라서 정해졌다는 게 이 부회장 측 설명이다. 이 부회장은 물론 삼성 임직원 누구도 최 씨의 존재를 몰랐다고도 했다.
송 변호사는 마지막으로 "이 부회장의 '승계 작업'이라고 하는 것은 대가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가공의 틀을 급조한 것"이라며 "얼핏 보면 굉장히 설득력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논리적으로 모순투성이"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이 부회장은 구속기소된 뒤 처음으로 법정에 나왔다. 수의 대신 회색 양복에 흰 셔츠 차림이었다. 그는 재판 내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차분하게 재판을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