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貨殖具案(화식구안)] 트럼프의 자가당착, 무역적자 줄이기

입력 2017-04-07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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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현대경제연구원장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미국으로 건너가 트럼프 대통령과 역사적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여러 가지 의제가 다루어지겠지만 트럼프 정부의 입장은 일관되게 통상 압력에 맞춰진 것으로 보인다.

즉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2000년도 819억 달러에 불과하던 무역 적자가 2015년에는 3340억 달러로 대폭 확대되었다는 점, 이로 인해 미국 제조업 일자리는 2000년 1784만 개에서 2017년엔 1234만 개로 줄어들었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며,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대규모 무역 흑자를 내는 이면에는 중국 정부가 인위적으로 위안화 환율을 낮게 유지하는 환율조작(Currency Manipulation)을 행해오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막대한 무역 흑자를 줄이라는 압력을 강하게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과연 중국의 등장 이후 미국의 대외 무역수지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가? 연도별 미국의 대외 무역수지 통계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품과 서비스 수지를 합친 미국의 대외 무역수지는 2000년 3725억 달러 적자에서 매년 급격히 확대되어 미국 금융위기가 터지기 직전인 2006년 사상 최대치인 7617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후 정작 금융위기가 발발한 2009년에는 3837억 달러로 급격히 축소되었다가 최근 몇 년간은 5000억 달러 수준에서 매우 안정적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자유변동환율제가 도입된 1973년 이래 단 한 해도 무역수지 적자를 면한 적이 없는 만성적 적자국이다. 그렇다면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강하게 밀어붙이는 통상정책으로 만성적인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가 해소될 수 있을 것인가? 그 대답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왜 그러한가? 미국은 달러화라는 기축통화를 발행하는 패권국이다. 한 나라의 통화가 기축통화가 되기 위해서는 소위 ‘트리핀의 딜레마(Triffin’s Dilemma)’라는 어려운 조건을 통과해야 한다. 그것은 첫째 무역 적자가 나야 하며, 둘째 무역 적자가 났음에도 통화가치가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딜레마이다.

왜 무역수지가 적자가 되어야 하는가? 무역수지 적자가 대규모로 나야만 달러화가 해외에 공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축통화란 세계 무역의 가장 기초 통화라는 의미이며 기초통화가 되기 위해서는 달러화가 미국 국내뿐만이 아닌 해외에도 광범위하게 공급되어야 한다. 해외에 달러화를 지속적으로 공급할 유일한 방법이 바로 미국이 대규모 무역 적자를 내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일본 엔화나 중국 위안화처럼 매년 대규모 무역 흑자를 내는 국가 통화들은 처음부터 국제통화가 될 자격에 미달하는 셈이다. 보통 국가의 경우 매년 대규모 무역 적자가 나면 해당 국가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져 통화가치가 폭락하고 금융위기나 경제위기로 이어지게 된다. 미 달러화의 경우 기축통화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무역 적자에도 불구하고 그 통화가치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데, 현재까지는 미국이라는 세계 유일 초강대국 지위에 힘입어 이러한 딜레마를 무난히 견디고 있다.

결론적으로 달러화란 기축통화를 가지고 있는 미국 입장에서는, 대규모 무역 적자는 일종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생각해 보자. 미국 입장에서 달러화란 종이돈을 찍어주고 독일이나 중국, 일본 등으로부터 물건을 가져오는 이 막강한 발권력을 유지하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되겠는가, 아니면 자발적으로 무역 적자를 없애 이러한 특권을 포기하는 게 도움이 되겠는가?

대답은 자명하다. 즉, 미국 입장에서는 무역수지 적자 및 그로 인한 제조업 일자리의 일부 상실은 이러한 발권력에 힘입은 미국 사회의 풍요로움이 치러야 할 최소한의 대가인 셈이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 적자 줄이기 시도는 자가당착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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