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가봐야 나중에 닭 튀겨야 되잖아요. 그마저도 들어갈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으니 답은 공무원 밖에 없죠.” 공무원 시험을 왜 준비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공시족’(공무원 시험 수험생, 공시생이라고도 함) A씨의 답변이다.
8일 5700여명을 뽑는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는 공시생의 수는 25만여명. 지난 2011년 18만5000명으로 추산되던 공시생 수가 6년만에 35%나 증가했다. 40대 1을 넘는 극한의 경쟁률을 알면서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이유로는 크게 일과 삶의 균형, 직업 안정성, 채용 절차상의 공정성이 지목된다.
최근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은 직장 선택의 최우선 요소로 ‘워라밸(Work-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신조어를 꼽는다. 지난 6일 한국토익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청년들의 43.6%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회사의 조건으로 ‘일과 개인 생활의 균형’을 꼽았다. 서울의 한 자치구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B씨는 “직무에 따라 업무강도는 다르지만 업무량이 많은 공무원이라 해도 사기업만큼 힘든 경우는 흔치 않다”며 “육아휴직 등도 철저하게 지켜지는 공무원은 흔히 말하는 ‘워라밸’이 좋은 직업인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국가가 망하지 않는 한 정년이 보장된다는 안정성도 공무원의 큰 장점 중 하나다. 지난달 23일 미래에셋은퇴연구소가 발표한 ‘중산층 퇴직자 조사’에서는 91.6%의 퇴직자가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59세 이전에 퇴직했다고 답했다. 설령 대기업에 입사한다 해도 이른 나이에 회사 밖으로 내몰리는 혹독한 현실을 목도한 청년들은 자연히 공무원의 안정성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으로 몰리는 가장 결정적 요인은 스펙 등에 구애 받지 않고 시험이라는 공정한 절차를 통과하기만 하면 합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견기업에서 인턴 경험을 했다는 공시생 C씨는 “회사 임원이 지인 몇 명을 신입으로 입사시키는 걸 보며 정직원이 되긴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오로지 시험 성적으로만 합격이 결정되는 공무원 시험 쪽이 승산 있다고 생각해 이 길을 택했다”고 말했다. 지난 31일 대학내일 20대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68.9%의 공시생들이 공무원시험 준비가 다른 취업 과정보다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진입장벽이 낮다고해도 공무원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상당수의 공시생은 직렬에 관계없이 서울 최대의 공시생 타운인 노량진에서 수험 생활을 한다. 합격생 배출을 많이 하는 소위 ‘1타 강사’의 강의를 듣기 위해 공시생이 많이 모이는 노량진에서 준비해야한다는 것이 수험생들의 중론이다.
하지만 노량진에서의 시험공부는 수험생 입장에서 꽤나 부담스러운 체재비(滯在費)를 요구한다. 고시원 월세 50만 원에 독서실 15만 원, 식비 40만 원 등 최소한의 생계에 필요한 비용만으로도 연간 약 1200만 원의 비용이 필요하다. 여기에 학원비와 교재비, 학용품비 등 수험생활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합치면 지출을 아무리 줄여도 연간 1500만 원을 훌쩍 넘는 돈이 든다.
이같이 공시생이 늘어만 가는 사회 흐름은 국가 전체의 경제 활력의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5일 발표한 ‘공무원시험의 경제적 영향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공시생 증가로 인한 국가 경제 손실액이 17조 원에 이른다. 공시생들이 수험기간 동안 창출하는 소비의 활력보다 수험 기간 경제활동을 하지 못해 손실되는 국가 경제의 기회비용이 압도적으로 큰 것으로 추산됐기 때문이다.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공시대첩’ 현상에 대해 “청년들이 계속 공무원 시험에 나서는 것은 한국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그대로 반증한다”며 “OECD 평균보다 10년 근속 노동자는 절반, 1년 미만 초단기 근속 근로자는 2배인 현실 속에서 청년들은 어쩔 수 없이 공무원 시험을 택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