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질긴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조 회장이 방위산업진흥회(이하 방진회) 수장으로서 대우조선해양 채무 재조정의 승인권자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산은은 지난해 한진해운 구조조정 과정에서 조 회장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고 결국 한진해운은 법정관리를 맞게 된 과거가 있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은과 수출입은행은 대우조선 채무 재조정을 위해 지난 3일 시중은행 9곳과 서울보증보험, 방진회에 채무 재조정 합의서를 보냈다. 서명란에는 이동걸 산은 회장, 최종구 수은 회장을 비롯해 ‘방위산업진흥회 회장 조양호’까지 13개 기관 수장의 이름이 나열돼 있다.
합의서에는 시중은행이 보유한 무담보채권 7000억 원어치 중 80%(5600억 원)를 출자전환하고 나머지는 만기를 5년 유예해 달라는 요구가 담겼다. 서울보증과 방진회에 대해서는 기존 발급잔액 범위 내에서 방산 보증을 지속해 달라고 요청했다. 서울보증과 방진회는 대우조선에 각각 1조2500억 원, 9100억 원 한도로 방산 관련 보증을 제공하고 있다.
대우조선은 전투함·잠수함 등 방산 부문 영업도 지속해왔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17척의 잠수함을 수주한 실적도 있다. 이러한 특수선의 주요 구매자인 방위사업청이 대우조선에 선수금을 집행하려면 방진회나 서울보증의 보증서가 있어야 한다. 이에 대우조선 회생에 이들 기관 참여가 필수적인 상황이다.
조 회장은 방진회 내에서 대한항공의 입지가 큰 이유로 2004년부터 13년간 회장을 맡고 있다. 현재까지 5번 연임했고 이번 임기는 내년 2월까지다.
지난해 금융당국과 산은은 한진해운 법정관리를 진행하면서 대주주인 조 회장의 책임성을 지적해왔다. ‘조선ㆍ해운업 구조조정 연석 청문회’에서는 임 위원장과 조 회장의 한진해운 파산 책임 떠넘기기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특히 이동걸 산은 회장은 한진해운을 법정관리로 보낸 이유에 대해 “대주주가 ‘내 팔 하나 자르겠다’는 결단이 없었다”고 비판했다.
당시 조 회장은 “경영난을 겪던 한진해운을 2014년 다시 맡아 한진칼과 대한항공 등 계열사를 통해 2조 원 가까이 지원했다”고 맞붙었다. 5600억 원 규모 자구안도 냈지만 산은 등 채권단이 요구한 7000억 원에 못 미쳤고 결국 한진해운은 파산을 맞았다.
국민연금 등 사채권자의 반발로 채무 재조정이 무산될 위기에 놓인 산은에 조 회장과의 악연까지 겹친 것이다. 방진회 실무까지 조 회장이 간섭하진 않지만 산은 입장에서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대우조선 채무재조정에 관한 사안은 조 회장이 방진협 회장 자격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그룹 차원에서는 결과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