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십수 년간 이어진 세계경제의 고성장은 빚으로 만들어진 거품이었고, 미국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는 거품을 만들어낸 인간들에 대한 일종의 심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는 이 시기에 일어난 커다란 재앙을 비켜갈 수가 있었다. 이는 지난 1997년의 경제위기 때 많은 것을 이미 터득했으며 또한 재정상태가 비교적 양호했던 덕분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언제, 어느 시점에서 이와 유사한 재앙에 휘몰릴지는 모를 일이다.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2014년 결산기준 전년 대비 40.6조 원 늘어난 530.5조 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35.7%에 달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우리의 나라 빚 문제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부채비율은 주요 선진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미국은 109.2%, 일본 224.2%, 독일 81.4% 등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110.9%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채무 증가세가 지나치게 가파르다는 데 문제가 있다. 지난 10년 동안의 증가 속도는 OECD 31개 국가 중 최고이다. 더욱이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등 4대 공적연금을 비롯해 기초노령연금, 건강보험 등 인구 고령화 관련 비용 지출이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빠른 속도를 보이고 있다.
정부의 2016년 예산안에 따르면 국가채무 규모는 2015년 595조 원에서 2016년 645조 원으로 늘어나고, GDP 대비 국가채무는 2015년 38.5%에서 2016년 40.1%로 증가해 40%대의 국가채무 비율 전망이 처음으로 나왔다. 여기에 공기업 채무까지를 포함할 경우, 국가채무는 1000조 원을 훌쩍 넘어서게 된다.
국가채무의 질도 좋지가 않다. 국가채무는 금융성 채무와 적자성 채무로 나뉜다. 외환시장 안정용 국채, 국민주택기금 등 금융성 채무는 외화자산이나 대출금 등 대응자산을 보유한 채무다. 따로 재원을 마련하지 않아도 융자금 회수, 자산매각 등 자체 수단으로 빚을 갚을 수 있다.
그러나 일반회계 적자보전용 국채나 공적자금 국채전환 등의 적자성 채무는 금융성 채무와 달리 대응 자산이 없다. 빚을 갚으려면 세금으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현 세대가 자식 세대에게 세금부담을 떠넘긴다는 점에서 ‘질 나쁜’ 채무이다. 2013년부터는 이처럼 질이 좋지 않은 적자성 채무가 드디어 과반을 넘어섰다. 2014년에도 적자성 채무는 282조 원으로 전체의 53.3%에 이르고 있다. 더욱이 국가채무 이자부담액만 해도 20조 원에 달하고 있어 재정 경직성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재정 상황도 결코 녹록지 않은 편이다. 복지확대로 재정지출 수요는 급증하고 있는 데 반해, 재정수입은 고령화로 인해 둔화될 것이 뻔해 국가채무가 급속히 증가할 것이라는 얘기다. 여기에다 남북통일 같은 불확실성이 더해지면 국가채무는 감당하기 힘든 수준까지 치솟게 된다. 따라서 앞으로 국가채무를 적정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는 불요불급한 재정지출의 억제, 복지제도의 합리적 개선 등을 통해 재정의 건전기조 유지를 위한 노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야 한다.
이철환 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