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영국의 탈퇴와 관련해 2년간의 협상에서 강경하게 대응할 것임을 예고했다. 도날트 투스크 유럽이사회 상임의장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영국의 EU 탈퇴인 브렉시트와 관련해 가이드라인 초안에서 탈퇴와 무역협정을 동시에 협상하는 일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앞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지난달 29일 회원국의 EU 탈퇴를 명시한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하는 서신을 투스크 의장에게 보냈다. 당시 서신에서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와 새 무역협정 협상을 동시에 하자고 제안했다.
이번 가이드라인 초안은 메이 총리의 서신에 대한 답변 격으로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한 셈이다. 양측이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의견 충돌을 빚으면서 2년간의 협상이 쉽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초안은 오는 29일 EU 정상회의에서 최종 채택될 예정이다.
FT는 가이드라인 초안이 영국과 야심 찬 미래 파트너십을 구축하려는 EU의 희망을 담고 있지만 협상에 대해서는 단계적인 접근을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영국을 불안하게 하는 부분은 초안이 명시한 브렉시트가 이뤄지고 무역협정이 체결되기 전인 전환기 상황이다. 초안은 브렉시트 이후 영국이 EU 단일시장에 접근하려면 기존의 규제와 예산 감독집행수단과 시스템을 따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외교소식통들은 가이드라인이 프랑스와 독일 등 정부의 검토를 거치면서 더욱 엄격한 조건이 추가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초안은 시민권이나 영국 금융부채와 관련해서는 모호한 모습을 유지했다.
투스크 의장은 이날 몰타에서 “EU는 2년간의 협상에서 금융 비용과 시민권, 자유무역협정(FTA)을 중심으로 다룰 것이며 징벌적 접근을 추구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브렉시트 자체가 이미 충분히 징벌적”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영국은 회원국과 협상을 개별적으로 할 수 없으며 오직 EU 전체와 협상해야 한다”며 “이것이 나의 첫 번째 이혼이며 마지막이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가이드라인이 채택되면 EU집행위원회(EC)가 협상에 반드시 포함될 의무사항을 정한다. 이는 EU 수석 브렉시트 협상가인 미셸 바르니에가 우선순위와 목표를 구체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FT는 전했다.
가이드라인 초안은 영국이 EU를 떠나면서 경제와 시민이 혼란에 빠질 것임을 직설적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평가다. 초안은 “회원국과 같은 의무를 지지 않는 비회원국이 같은 권리와 혜택을 누릴 수 없다”며 “유럽이사회는 이런 맥락에서 영국 정부가 네 가지 자유(EU 원칙인 노동ㆍ자본ㆍ상품ㆍ서비스 이동 자유)와 단일시장 접근이 분리될 수 없고 ‘체리피킹(Cherry Pickingㆍ좋은 것만 취사선택하는 행위)’은 없다는 점을 인정한 것을 환영한다”고 명시했다.
초안은 또 경쟁과 보조금 통제, 재정 덤핑에 대한 조항도 언급했다. 영국 정부가 브렉시트 이후 법인세 등을 낮춰 EU보다 더 큰 경쟁력을 갖추는 것을 견제하려는 의도다.
아울러 영국이 EU의 재정적 공약을 존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는 각종 채무와 예산적 책임 등 영국이 EU와 이혼하면서 합의금을 제대로 내라는 것이다. EC는 이혼 합의금 규모가 약 600억 유로(약 71조66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강경 대응을 예고했지만 EU는 협상을 원한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초안은 “협상 타결이 없는 ‘노 딜(No Deal)’ 시나리오는 모든 면에서 피해를 입힌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도 “EU 27개국은 아무런 합의가 없이 관리되지 않는 브렉시트도 준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