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금융위원회는 4조2000억 원의 혈세(血稅)를 투입할 당시 좋지 않은 여론을 의식한 듯 더 이상의 지원은 없다고 호언장담(豪言壯談)했다. 대우조선이 그대로 문을 닫으면 우리 경제에 심각한 피해가 예상된다며 은근히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결과는 달랐다. 대우조선은 KDB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 은행의 자금 지원 당시 추가 선박 수주와 앙골라 석유회사 소난골 드릴십 인도 등 정상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지난해 추가 수주는 계획 대비 10분의 1 수준인 15억 달러에 그쳤고, 소난골 드릴십 인도는 차일피일 미뤄지다 무산됐다. 계획대로 이뤄진 게 하나도 없자 대우조선은 또다시 유동성 위기에 빠질 위험에 처했다.
대우조선은 회사채 만기가 집중된 올해 하반기 부족자금이 2조 ~ 3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대우조선은 당장 다음 달 21일 4400억 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를 맞는다. 이어 7월에 3000억 원, 11월 2000억 원의 회사채가 줄줄이 만기가 된다. 대우조선이 끌어모을 수 있는 자금이 7000억 원 정도인 만큼 4월 회사채는 막을 수 있겠지만 이후는 장담할 수 없다.
급기야 정부는 7조 원에 가까운 자금이 더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신규 자금 2조9000억 원, 출자전환 2조9000억 원, 원금 상환유예 9000억 원 등 총 6조7000억 원이다.
신규 자금은 이번에도 국책 은행들이 부담한다. 출자 전환, 대출 상환유예 등은 시중 은행이 고통을 분담하는 시나리오이다. 시중 은행들은 애초 ‘추가 지원은 없다’고 했던 정부의 말 바꾸기에 뒤통수를 맞았다며 분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정부가 채권단 손실 분담을 통한 채무 재조정에 실패할 경우 ‘사전회생계획제도(P플랜)’를 적용할 수밖에 없다고 한 만큼 대놓고 반대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P플랜은 법원 주도로 회생이냐 청산이냐의 갈림길에 서는 일종의 법정관리이다.
시중 은행들이 내부적으로 이번 채무 재조정에 참여하는 쪽으로 방침을 정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법정관리로 가면 대출금 회수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정부는 대우조선이 망할 경우 우리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으로 전망했다. 회계법인 보고서를 근거로 금액 규모가 무려 59조 원에 달한다고 했다. 그런데 산업통상자원부는 손실액을 17조6000억 원으로 책정했다. 부처 간 손실액 추정치가 3배 이상 나는 셈이다.
금융위는 대우조선이 도산 처리되고 수주한 선박 건조가 중단되는 등 최악의 상황을 전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반면 산업부는 법정관리에 가더라도 즉각적인 청산이 아닌 만큼 건조계약 취소 등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조건이다.
금융위의 리포트가 과장됐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1년여 전처럼 엉성한 예측과 공포 마케팅으로는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대우조선 사태는 그동안의 경영 부실이나 관리·감독 소홀에 대한 책임을 엄중히 묻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국민의 엄청난 세금이 또다시 들어가는데, 대선을 앞둔 포퓰리즘이 아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