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개혁법(ACA), 이른바 오바마케어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재임 8년간 가장 공들여온 치적이다. 2010년 3월 23일 오바마 대통령이 ‘환자 보호 및 건강보험료 적정 부담법(PPACA·Patient Protection and Affordable Care Act)’에 서명함으로써 시행에 들어갔다. 이는 36대 대통령 린든 존슨이 저소득층·장애인을 위한 ‘메디케이드’와 65세 이상 노인을 위한 ‘메디케어’를 도입한 이래 민주당과 진보 진영이 50여년 만에 이뤄낸 역사적 승리이기도 했다. 2010년 이전 기준으로 무보험자 수는 5000만 명에 달했으며, 지금까지 약 2000만 명이 건강보험에 신규로 가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오바마케어는 성립 과정에 우여곡절이 많았던 만큼 시행 후에도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저소득층도 인터넷을 통해 저렴한 보험을 신청할 수 있게 하면서 전국민 보험 가입 실현의 길을 연 건 맞지만 보험료 상승과 재정 부담을 늘렸기 때문이다. 공화당이 2013년 연방정부 부분 업무정지(셧다운) 사태로 몰아간 것도 오바마케어가 화근이었다. 공화당은 오바마케어를 “비싼 재앙”이라고 불렀다. 그도 그럴 것이, 오바마케어 세액공제 비용만 10년간 1조1000억 달러, 메이케이드 확대 비용은 7100억 달러로 추산됐기 때문. 이는 증세와 큰 정부에 비판적인 공화당에 오바마케어 폐지를 요구할 수 있는 좋은 빌미를 제공했다. 공화당은 브로콜리가 아무리 몸에 좋아도 정부가 이를 강제로 사먹게 해선 안된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공화국이 다수를 차지하는 상하 양원은 올 1월까지 오바마케어 폐지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거부권을 발동하면서 물러서는 듯 했다.
그러다가 오바마케어 폐지에 힘이 실린 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강력하게 밀어부치면서다. 그는 취임 첫날인 지난 1월 20일 오바마케어 폐기하기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는 오바마케어가 보험료 상승과 재정 부담을 늘린다며 대선 캠페인 때부터 폐기할 뜻을 나타냈었다. 심지어 “오바마케어는 완전히 재앙”이라며 대체법안인 이른바 ‘트럼프케어’를 내놓겠다고 자신만만해했다.
지난 6일, 공화당이 공개한 오바마케어 대체법안에 따르면 미국민에 필요한 최소한의 의료보험 가입 의무화 규정이 삭제됐다. 다만 오바마케어의 특징은 유지했다. 부양가족은 26세가 될 때까지 부모의 보험에 포함되게 한다는 구조와 지병이 있는 환자도 계속 건강보험 대상이 되게 하는 등 오바마케어에서 인기가 높았던 부분은 유지됐다.
트럼프는 대통령 취임 후 100일 과제에 오바마케어 폐지를 넣지는 않았다.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법을 개정하려면 상원 규정상 의사진행방해(필리 버스터)를 막기 위해 60표가 필요하다. 그러나 공화당과 민주당 의석 수가 51석(미정 1) 대 48이어서 민주당 의원 8명이 공화당에 합류해야만 표결에 부칠 수 있다. 민주당의 반발을 극복하고 오바마케어를 완전히 폐지하는 게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의미다.
23일 하원에서는 오바마케어와 트럼프케어의 운명이 엇갈린다. 이날 하원에서 표결에 부쳐진다. 그동안 트럼프가 밝힌 모든 공약들의 실행 여부를 점칠 수 있는 첫 관문인 만큼 시장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트럼프케어가 통과되지 못하면 대규모 감세와 규제 완화, 인프라 투자 등 트럼프의 다른 친성장 정책들이 줄줄이 좌초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시점에서 트럼프케어 통과 여부는 불확실하다. 대체법안 입법에 제동을 걸 수 있는 29표를 쥔 공화당 내 강경파 그룹이 법안을 더욱 보수적으로 해야 한다며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원에서 통과되려면 공화당 내 반란표가 21표를 넘지 않아야 한다. 하원 표결을 앞두고 초조해진 트럼프 대통령은 21일에 공화당 하원의원들을 만나 “이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의원들이 내년 중간선거에서 패할 것”이라고 경고하며 트럼프케어에 대한 지지를 요청했다. 22일에는 하원 보수파 의원들을 만나 막판까지 협의를 계속하기도 했다.
시장도 회의적이다. 뉴욕증시에서 다우지수는 22일까지 5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23일 오전 아시아 주요 증시도 맥을 못추고 있다. 작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된 이후 줄곧 이어져온 랠리가 진짜 마침표를 찍을 것인가. 시장은 긴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