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총선에서 진보 진영이 우려와 달리 선전하며 극우 정당의 돌풍을 잠재웠다. 15일(현지시간) 실시된 네덜란드 총선 중간 개표 결과 마르크 뤼테 총리가 이끄는 집권여당 자유민주당(VVD)이 전체 150석 가운데 32석을 차지하며 제1당을 유지할 것으로 관측됐다. 반면 ‘반(反) 유럽연합·반(反) 이슬람·반 난민’을 내세워온 극우 정치인 헤이르트 빌더르스 대표가 이끄는 자유당(PVV)은 지난 선거보다 4석 늘어난 19석을 얻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이밖에 기독민주당(CDA)·민주66당(D66) 각 19석, 녹색좌파당(GL) 15석, 사회당(SP) 14석 등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날 저녁 뤼테 총리는 출구 조사 결과가 발표된 직후 지지자들과 만나 사실상 승리를 선언했다. 그는 “네덜란드는 잘못된 포퓰리즘을 향해 ‘그만 멈추라!’라고 말했다”고 강조했다. 출구조사 결과 임기 4년의 하원의원 150명을 선출하는 이번 총선의 투표율은 81%에 달했다. 이는 30년래 최고 투표율이다. 그만큼 이번 총선에 대한 네덜란드 국민의 관심이 뜨거웠다는 이야기다.
네덜란드 총선은 올해 선거의 해를 앞둔 유럽에서 리트머스 시험지라는 평가는 받았다. 지난해 영국 브렉시트(영국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를 시작으로 미국 대선 도널드 트럼프 당선을 계기고 극우 포퓰리즘이 유럽 곳곳에서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네덜란드에서마저 극우정당이 선전을 하게 될 경우 4~5월 프랑스 대선과 9월 독일 총선에서도 극우 세력에 힘을 실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선거 초반 극우 포퓰리스트 헤이르트 빌더르스가 이끄는 자유당이 기성 정치권과 차별화하며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빌더르스는 집권하면 넥시트(네덜란드의 EU 탈퇴)를 비롯해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를 폐쇄하고 이슬람 경전인 쿠란을 금지하며 난민들에게 네덜란드 국경을 폐쇄하겠다고 주장했다. 예상외의 높은 지지율을 얻어 극우 열풍이 네덜란드까지 덮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공개된 여론조사에서 극우정당의 지지율이 주춤해진 것으로 나와 이미 선전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총선 직전 발생한 네덜란드와 터키와의 외교분쟁 이슈가 반이슬람을 내세워온 자유당에 반사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예상됐으나 오히려 뤼테 총리의 차분하고 단호한 대처에 대중들이 후한 점수를 주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네덜란드의 트뤼도’, ‘네덜란드의 오바마’로 불리는 이세 클라버(30)가 이끄는 진보 진영의 녹색좌파당이 지난 선거보다 무려 10석이 늘어날 것으로 관측돼 선전한 것도 극우 열풍을 잠재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클라버 대표는 모로코 출신 아버지와 네덜란드계·인도네시아계 사이에서 태어난 어머니를 두고 있어 반(反)이슬람·반 난민을 주장하는 빌더르스 대표와는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다.
한편 네덜란드 의회는 150석으로 구성되며 집권을 위한 다수당이 되려면 76석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정당 수가 28개에 달하는 네덜란드는 연정이 아니면 집권이 어려운 구조다. 이런 가운데 빌더르스 자유당 대표는 이날 밤 연설에서 연정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주목된다. 앞서 주요 정당들은 자유당이 제1당이 되더라도 연정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공개 선언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