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2(중종 27)∼1575년(선조 8). 조선 제13대 명종의 왕비이다. 성은 심(沈)씨이며 본관은 청송이다. 아버지는 청릉부원군 심강(沈鋼), 어머니는 전주 이씨 이대(李薱)의 딸이다. 슬하의 1남이 순회세자(順懷世子, 1551∼1563)이다.
1532년(중종 27) 5월 심강의 맏딸로 태어나 11세에 두 살 아래인 경원대군의 부인이 되었다. 1545년(인종 1) 7월 인종이 승하하고 동생인 경원대군(명종)이 즉위함으로써 왕비가 되었다. 1551년(명종 6) 5월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순회세자이다. 1557년(명종 12)에 원자를 세자로 책봉하고, 황대임(黃大任)의 딸을 세자빈으로 간택했다.
그러나 황씨가 병약하여 1년이 넘게 가례를 미루자 하는 수 없이 1559년(명종 14) 세자빈을 교체하여 윤옥(尹玉)의 딸을 세자빈으로 삼아 가례를 올렸다. 그러나 순회세자는 1563년(명종 18) 13세의 어린 나이로 사망하고, 이로 인해 왕실의 후사가 단절되었다.
순회세자가 죽자 후계자 선정 문제가 중요 현안이었다. 윤원형이 덕흥군의 아들을 사위로 삼아 후사를 잇고자 했으나 명종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1565년(명종 20) 문정왕후가 65세로 승하하고, 곧이어 명종이 젊은 나이로 승하하자(1567년, 34세) 인순왕후는 “을축년(명종 20)에 주상으로부터 받은 전지(傳旨)가 있으니 그 사람을 사군(嗣君)으로 정해야 할 것”이라면서 왕위에 하성군 이균(李鈞, 선조)을 세웠다.
선조는 16세의 나이로 아직 혼인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선조가 아직 정치 경험이 없는 어린 왕이라는 사실로 수렴청정이 제기되자 인순왕후가 왕대비로서 수렴청정을 행했다. 인순왕후는 선조 초의 불안정한 정국에서 국왕의 보호자 역할을 자임하면서 정국의 안정을 책임졌다.
이 기간에 인순왕후는 인사권을 제외한 나머지 국정 전반을 모두 처리했다. 그녀는 과거 정치를 청산하고 새로운 정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했다. 가장 먼저 을사사화(乙巳士禍)에 화를 입은 인물들을 신원하여 복직시켰다. 1549년(명종 4) 기유옥사(己酉獄事)로 유신현(維新縣)으로 강등되었던 충주를 다시 목(牧)으로 올렸다.
또한 인순왕후는 명종 대에 환관이 왕실 및 척신세력과 연계하여 일정한 폐해를 일으켰다는 판단에서 환관의 수를 절반으로 줄였다. 오례의(五禮儀)의 정비에 따라 상복의 경우 흑립(黑笠), 백립(白笠)을 다시 사용하도록 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는 과거 정치를 청산하고 새 정치 질서의 수립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인순왕후의 공식적인 수렴청정은 8개월 만인 1568년(선조 1) 2월에 끝이 났다. 인순왕후의 수렴청정은 여성의 정치 참여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으로 인해 짧은 기간에 마무리될 수밖에 없었다. 1575년(선조 8) 1월 44세의 나이로 창경궁에서 승하했다.
시호는 선열의성인순(宣烈懿聖仁順)이다. 능호는 강릉(康陵)으로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있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