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미국 대선 이후 불확실성이 높아진 가운데서도 확실해진 게 있다. ‘변동성이 높아지면 주가가 하락한다’는 시장의 기본법칙 중 하나가 깨졌다는 것이다. 미국 대선 이후 불확실성이 높은 와중에도 주가가 상승하는 날이 꽤 여러 번 있었다.
‘리스크가 높아지면 그만큼 주가도 상승한다’는 게 일리가 있을까. 이에 대해선 전문 트레이더와 개인 투자자 간에 다소 받아들이는데 차이가 있다. 14일자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개인 투자자들은 대량의 자금을 쏟아붓고 있지만 전문 트레이더들은 변동성이 겨울잠을 자는 게 아니라, 단지 숨을 죽이고 있다고 본다. 이들이 리스크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주가 폭락 뿐만 아니라 주가가 10% 이상 급등하는 ‘멜트-업(melt-up)’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시세가 크게 하락하거나 혹은 상승할 거란 전망이 강해지면 옵션에 대한 수요가 높아져 옵션 가격은 상승한다.
이 수수께끼는 내재변동성(Implied volatility)에 근거한 VIX지수(공포지수)와 S&P500지수의 상관관계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유럽판 VIX인 VStoxx와 유럽 증시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원래 VIX나 VStoxx가 상승한 날은 주가가 하락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변동성이 높아지는 것 자체가 주가 하락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이 역상관관계가 무너지고 있다. 특히 2월은 내재변동성과 주가가 동시에 상승하는 일이 잦았다. VIX 자체가 사상 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수와 S&P500지수의 30일간의 상관지수는 2006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2월 뉴욕증시를 보면 개인 투자자들로부터 대량의 자금이 유입되면서 다우지수는 12거래일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그러나 다른 지표는 경계심을 높이기에 충분했다. 다우지수가 고공행진을 이어갔어도 개별 종목이 모두 오른 것은 아니었기 때문. 예를 들어 경기방어주는 ‘Out Perform’이었지만 중소형주는 평상시 상승 국면과 달리 ‘Under Perform’에 그쳤다.
트레이더들은 경계를 강화하면 주가 하락에 대한 헤지로 풋옵션을 늘리는 경우가 많다. 다만 이 경우에는 내재변동성이 상승한다. volatility trader는 보다 일반적인 멜트-다운 만큼이나 멜트-업을 우려한다. 더 나아가 이들은 급격한 주가 상승에 의해 궁지에 몰릴 리스크도 높아진다고 예상한다. 뉴욕 소재 매크로 리스크 어드바이저스의 프라비트 친타왕반니크 옵션 브로커는 “작년은 수익률을 추종하는 움직임을 배경으로 수입원의 하나로서 콜옵션을 매도하는 투자자가 늘었다. 하지만 주가가 상승함에 따라 이러한 옵션은 채무가 돼 투자자는 멜트-업 시 큰 손실을 피하기 위해 콜옵션 매수가 불가피해졌다. 이런 매수는 콜옵션의 가격을 더욱 끌어올리기 때문에 내재변동성도 상승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3월 들어서는 VIX와 S&P500지수 간의 정(正)의 상관관계는 2월보다 약해졌다. 두 지수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 건 7거래일 중 2거래일(10일 마감 기준)에 불과했다. 2월은 19거래일 중 7거래일로, 확률로 치면 37%였다. 작년 11월 미국 대선까지 20년간은 이것이 18%에 그쳤었다.
VIX지수는 기존과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게 확실하지만 그 절대값은 매우 낮다. VIX지수는 1990년 이후의 하락폭이 6%에 그친다. 이는 S&P500지수를 구성하는 업종들이 큰 가격변동을 서로 상쇄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실현 변동성(realized volatility)은 하락하고, 대량의 자금 유입이 시장 전체를 끌어올리는 구도가 됐다. 문제는 업종 간의 이러한 움직임과 자금 유입이 중단되면 지금까지 숨죽이고 있던 변동성이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증시 강세는 기존과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투자자들이 안은 딜레마를 부각시킨다. 즉, 멜트-다운과 멜트-업 모두 실현할 가능성이 이전보다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S&P500지수가 겉으로는 평온을 유지하고 있지만 멜트-다운과 멜트-업, 그 어느 쪽이 일어나든 투자자들에겐 리스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