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전 대통령은 헌재의 탄핵 결정에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며 사실상 불복을 선언했다. 국민의 명령과 법치의 존엄 앞에 반기(反旗)를 든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친박(친박근혜)계’ 호위무사를 앞세워 ‘사저정치’까지 이어가고 있다. 친박계 맏형 서청원 의원과 좌장 최경환 의원, 태극기 집회로 친박의 중심이 된 김진태 의원과 조원진·윤상현·이우현·민경욱·박대출 의원 등 친박 8인은 사저를 드나들며 검찰 수사를 함께 대비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를 통해 박 전 대통령을 적극 옹위(擁衛)해 보수 세력 재결집을 시도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과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각각 상도동과 동교동 자택을 중심으로 세력을 모았던 것처럼 정치권에선 벌써 국정농단 사태 이후 사실상 ‘은둔’ 생활을 해온 친박계가 정치 재개를 위해 ‘삼성동계’를 구성, 세력화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친박 의원들은 자발적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도와주는 것이라며 모두 손사래를 친다. 그러나 총괄, 언론 등 각각의 기능적인 역할을 분담하는 것부터가 정치 세력화에 대한 의구심을 걷을 수 없게 하는 대목이다. 현직 국회의원의 신분으로 파면당해 물러난 전직 대통령의 사설 비서를 겸직하는 것은 뽑아준 국민을 정면으로 배신하는 행위이자, 국회법 제29조(국회의원 겸직 금지 의무)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는 지적까지 제기된다.
박 전 대통령을 보좌하던 한광옥 비서실장 등 청와대 참모진의 거취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사표 반려로 ‘유임’으로 결정된 배경도 의심스럽다. 현재 안보와 경제 등 엄중한 상황을 고려해 한 치의 국정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반려했다지만, 파면된 대통령을 보좌했던 참모들이 청와대에 남아 있는 데 대한 논란을 해명할 명분은 없어 보인다.
청와대 참모들은 차기 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박근혜 정부의 대통령 기록물 지정 및 이관 작업과 인수인계 매뉴얼 마련 등 마무리 업무를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청와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증거인멸을 도우면서 검찰 수사 대응과 ‘사저 정치’ 보좌를 용인할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더욱이 총리실 업무를 도와주는 것 외에 더 이상 청와대에서 할 일도 없는 청와대 비서진에게 국민의 혈세로 월급을 준다는 데 대한 비판도 나올 수 있다.
지난 넉 달간 추위 속에서 촛불집회를 지켰던 민심은 국정농단을 자초한 대통령의 정치적 부활이 아니었다. 검찰 수사의 증거물이 몰래 인멸되기라도 한다면 박영수 특검팀, 헌재 재판관들의 구슬땀은 무색해진다. ‘폐족(廢族)’ 위기에 내몰린 친박 의원들과 파면당한 박 전 대통령의 사저 정치 움직임이 과연 국민의 뜻인지 한 번만이라도 되새겼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