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학회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사법개혁 관련 조사와 학술행사를 축소하도록 지시하고, 이를 거부하는 법관의 부당 인사발령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임종헌(58·사법연수원 16기) 법원행정처 차장이 직위해제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14일 법원에 따르면 이인복(61·사법연수원 11기) 전 대법관이 양승태 대법원장의 요청으로 최근 법관의 부당 지시 의혹과 인사발령을 둘러싼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를 맡기로 했다.
이번 의혹은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이모 판사가 법원행정처 기획2심의관으로 발령났다가 돌연 직위해제되면서 불거졌다. 국제인권법연구회는 법원 내 최대 규모의 학회다.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최근 전국 판사를 대상으로 사법개혁 관련 설문조사를 벌이자, 임 차장은 이 판사에게 조사 결과를 외부에 공개하지 말라는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설문조사는 국제법 관점에서 본 사법 독립과 법관 인사제도에 관한 내용이다. 법원행정처는 사실상 사문화된 판사들의 학회 중복가입 금지 규정을 들어 국제인권법연구회에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이에 이 판사가 반발해 사의를 표명했고, 행정처는 이 판사를 원소속 법원으로 돌려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법관은 조사를 맡기에 앞서 논란의 중심에 있는 임 차장을 우선 직위해제됐다. 업무에서 배제된 임 차장은 사법연구 업무를 하도록 인사발령이 났다. 문책성 인사라기보다는 조사의 공정성을 위해서라는 게 법원 측 설명이다. 특별한 보직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대기발령 조치에 가깝다.
이 전 대법관은 오는 17일까지 진상조사단을 꾸릴 적임자를 추천받아 조사를 진행키로 했다. 이 전 대법관은 전체 판사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제가 평생 몸 담고 사랑해온 법원이 더 이상의 상처를 입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에 중책을 맡기로 했다”고 말했다. 국내 법관 인사제도의 문제점을 다룬 관련 학술대회는 오는 25일 연세대에서 열린다.
‘사법파동’은 법관들이 사법부 길들이기에 대한 저항으로 사표를 내는 등 스스로 목소리를 낸 일련의 움직임을 말한다. 1971년 군사정권 시절 1차 사법파동을 시작으로, 지난 2009년 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이었던 신영철 전 대법관이 촛불집회 재판에 개입한 것에 반발하는 5차 사법파동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