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환의 돈 이야기] 돈 풀어도 돈이 더 안돈다…왜

입력 2017-03-08 10:54 수정 2017-03-0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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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정책 안먹히며 ‘유동성 함정’ 우려…묵혀두는 금융자산 증가도 한몫

시중에 부동자금은 넘친다는데 내 주머니엔 돈이 없다. 왜 그런 것일까?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라는 용어가 있다. 이는 원래 컵을 피라미드같이 층층이 쌓아 놓고 맨 꼭대기의 컵에 물을 부으면, 제일 위의 컵부터 흘러들어간 물이 다 찬 뒤에야 넘쳐서 아래로 자연스럽게 내려간다는 이론을 뜻한다. 지금은 경제용어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즉 대기업, 재벌, 고소득층 등 선도부문의 성과가 늘어나면 연관산업을 이용해 후발· 낙후 부문에도 유입되는 효과를 의미한다. 이는 결국 돈이 돌아야 경제가 제대로 굴러간다는 것을 설명하는 하나의 이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시중에 돈이 잘 돌지 않고 있다. 이에 국가경제 전체가 위축되고 서민들의 삶이 어려워지고 있다. 이처럼 시중에 돈이 잘 돌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몇 가지 통화관련 지표를 통해 알아보자.

우선, 통화의 유통속도 하락이다. ‘통화의 유통속도(Velocity of money)’는 일정 기간 동안 한 단위의 통화가 거래에 사용되는 횟수를 나타내는 지표다. 쉽게 말해 시중에 돈이 돌고 도는 속도를 말한다. 이 속도가 빠르면 그만큼 경기가 좋아 시중에 돈이 잘 돌고 있다는 것을 뜻하며, 반대로 느리면 시중에 돈이 잘 돌지 않아 경제가 활력을 잃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시중통화량 지표인 광의통화(M2)로 나눠 계산한다. 즉 통화가 몇 번 돌아 GDP를 만들어내느냐는 것인데, 이 방정식에 따른 2014년 통화 유통속도는 GDP 1,485조원을 M2 2,010조원으로 나누면 0.74가 나온다.

과거 우리나라의 통화 유통속도를 보면 1970년대 중반 4에 가까웠으나, 그 뒤 계속 낮아져서 지금은 0.7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통화 유통속도가 떨어진다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실물경제 규모에 비해 통화량이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단기적으로는 돈이 제대로 돌지 않아 실물경제가 위축되고 있음을 뜻한다.

그러면 이처럼 통화의 유통속도가 떨어지는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통화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이론에 따르면 중앙은행이 금리를 낮추면 투자가 증가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금리를 낮춰도 투자가 늘어나지 않는 등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떨어지고 있다. 즉 경기부진을 막기 위해 양적완화 등 돈을 풀어도 경기는 제대로 잘 살아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우리 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빠진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이란 화폐공급을 아무리 늘려도 화폐수요가 무한대라서 소득을 늘릴 수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 가령 기업이나 가계가 향후 경기전망을 나쁘게 보고 있다면 통화를 아무리 많이 공급해도 투자와 소비가 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빠진 상황에서는 금융정책이 실효를 거두기가 어렵다.

또 다른 통화 유통속도 하락 이유는 다양한 금융상품의 출현에서 찾을 수 있다. 갈수록 수익증권, 금전신탁 등 실적배당형 상품과 같은 금융자산 보유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의 증가속도가 실물경제보다 빨라 통화의 유통속도 하락을 주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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