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일본 도시바의 미국 원자력발전 자회사인 웨스팅하우스의 유력한 인수자로 부상하고 있다.
웨스팅하우스는 미국에서 원전 2곳을 건설하면서 막대한 손실을 내 모회사인 도시바 전체를 경영난에 빠뜨렸다. 이에 도시바는 웨스팅하우스를 매물로 내놓았지만 사실상 이를 인수할 여력이나 관심이 있는 회사가 거의 없는 상황. 이런 가운데 한전이 유일한 인수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5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도시바는 웨스팅하우스와 더불어 현재 지분율 60%인 영국 원전 자회사 누젠(NuGen)도 매물로 내놓았다. 한전은 누젠 인수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독일 등 다른 나라가 원전 축소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영국이 글로벌 원전시장에서 중요한 국가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
한전은 아직 도시바와 웨스팅하우스 지분 인수 논의를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이를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한전 대변인은 “우리는 아직 도시바로부터 정식 오퍼를 받지는 않았다”며 “제안이 들어오면 이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글로벌 원자력산업의 선두주자로 도약하려는 야망을 갖고 있다. 또 한전은 지난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에 네 개의 원자로를 공급하면서 수출 200억 달러(약 23조1400억 원)를 돌파하고 나서 해외 거래 가뭄에 갈증이 커진 상태여서 웨스팅하우스에 눈독들일 수 있다고 FT는 분석했다.
무엇보다 한전을 제외하면 웨스팅하우스 인수의 뚜렷한 입찰자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유력 입찰자로 거론됐던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은 프랑스 원전설계업체 아레바와의 파트너십을 이유로 웨스팅하우스 인수를 배제했고, 히타치도 웨스팅하우스와는 기술이 다르다며 투자하지 않겠다는 의향을 밝혔다.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과 프랑스 전력업체 EDF도 인수에는 관심이 없다.
로펌 셰어맨&스털링의 조지 보로바스 파트너는 “도시바가 웨스팅하우스 지분 일부 또는 전부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면 가장 가능성이 있는 인수자는 한국에서 나올 것”이라며 “우리는 누젠에 대한 한전의 관심에 주목하고 있다. 이에 웨스팅하우스와 누젠을 같이 묶는 일종의 ‘패키지 딜’이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FT는 한전이 웨스팅하우스를 인수하거나 투자에 관심이 있는 이유로 적어도 두 가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한전과 웨스팅하우스의 딜은 한국이 글로벌 원전산업에서 중요한 국가가 된다는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두 기업 모두 수출을 성장 원동력으로 삼고 있다. 한전은 오는 2020년까지 UAE 프로젝트 이외 6기 이상의 원전을 추가로 수출하는 것이 목표다. 웨스팅하우스도 현재 미국과 중국의 새 원전에서만 채택 중인 AP1000 원자로 판매 가속화를 추진하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1970년대 한국 최초 원전 건설에 도움이 된 한전과 웨스팅하우스의 기술 연계성이다. 한전의 APR1400 원자로 설계는 웨스팅하우스가 소유한 ‘시스템 80+’이라는 기술에서 발전한 것이라고 FT는 설명했다.
여전히 은행가들은 도시바가 웨스팅하우스 매각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기술을 이용해 현재 미국에서 건설 중인 원자로 4기는 이미 계획보다 공정이 3년 이상 뒤처져 있는 상태여서 비용이 원래 예산보다 100억 달러 이상 초과했다. 이는 도시바가 지난달 미국 원전 사업과 관련해 63억 달러의 상각 처리를 발표한 주원인이었다.
일부 전문가는 지난 2011년 후쿠시마 재앙 이후 원전 수요가 감소한 상황에서 한전의 웨스팅하우스에 어떤 이점이 있는지 의구심을 표시하기도 했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한전이 우울한 산업 전망 속에서 문제가 되는 기업을 인수해 재정적 위험을 감수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원전 부문의 이런 쇠퇴는 관련 기업들의 통합 압박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EDF나 GE 미쓰비시 히타치 모두 웨스팅하우스 투자에 관심이 없는 상황에서 서구 국가들은 한국이 도시바 자회사의 구원자로 떠오르면 이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FT는 강조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앤서니 프로갓 선임 연구원은 “모든 기술에 있어 안정성과 혁신적 측면에서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