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칼럼] 박 대통령 탄핵이 기각되면

입력 2017-02-28 08:45 수정 2017-02-28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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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며칠 전 한 도시의 대통령 탄핵 반대집회에서 주최자가 “(우리는) 촛불집회를 축제라고 부르며 많은 이들이 기뻐하는 현실이 슬프고 걱정돼 이 자리에 모였다”며 “애병필승(哀兵必勝)이라는 말이 있다. 슬픈 병사인 우리는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노자 도덕경 69장이 원전이라는 이 ‘애병’에 대해서는 슬픈 병사라기보다 비분에 찬 병사라고 보는 해석이 있다. “쌍방의 전력이 대등할 때는 비분에 차 있는 쪽이 이긴다”[故抗兵相加 哀者勝矣]는 해석이다. 병법서 ‘손자’ 작전편에도 “적을 죽이려는 자는 부하들에게 적개심을 품게 하라”[殺敵者 怒也]는 말이 있다.

그러나 애병을 “비슷한 힘의 군대가 서로 겨룰 때는 자애로운 자가 이긴다”고, 자애 개념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도덕경 69장은 67장부터 이어진 노자의 생각이 집약된 것이어서 맥락에 맞게 자애로운 사람으로 해석하는 게 타당할 것 같다. 애자(哀者)의 哀는 이 경우 ‘슬프다’기보다 ‘불쌍히 여기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애자의 개념을 이렇게 정립하고 촛불민중과 태극기인파가 서로 바라본다면 상대는 비분에 가득 차 싸워 없앨 대상이 아니라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극단적 대립과 쟁투, 아스팔트를 피로 물들인다거나 이제 혁명밖에 없다는 살벌한 언어가 횡행하는 상황이어서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후가 걱정스럽다. 그래서 갈등과 찬반상황에 대한 개념을 새로 정립하는 게 절실해졌다.

역시 예상대로 박근혜 대통령은 헌재의 최후변론에 나오지 않았고, 성실하게 수사에 임하겠다는 약속을 끝내 어겼고, 변명으로 일관한 의견서 대독을 통해 의혹과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대통령 취임 이후 단 한순간도 개인의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국가와 국민을 생각해 최선을 다했으며 20여 년 정치여정에서 단 한 번도 부정부패에 연루된 적이 없다는 진술은 그 자신만의 주장일 뿐이었다. 사실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일이라는 신념으로 펼쳐 온 정책이 그와 특정인의 사익을 위한 것이라는 의혹에 사로잡혀 부정한 것처럼 인식되는 현실’은 스스로 만든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열심히 잘못 살아온 것을 아직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헌재의 결정뿐이다. 탄핵 인용이든 기각이든 결말이 그리 멀지 않았다. 대통령 본인을 비롯한 국민 모두가 헌재의 결정을 승복해야 한다. 여야 정당대표든 대선 출마예정자든 쌍방의 법률상 대리인이든 촛불과 태극기집회의 주도자든 누구든 다 마찬가지이다.

탄핵이 인용된다면 당연히 대통령은 물러나야 한다. 하지만 기각된다면? 정규재TV와의 인터뷰에서 잠깐 비친 생각대로 탄핵이 기각되면 ‘그동안 잘못된 것을 국민들과 함께 바로잡아 건전하게 나아가도록’ 모종의 활동이나 작용을 하려 하는 건 아닐까? 그런데, 그런 복수나 한풀이는 둘째 치고 나라를 이끌어갈 신뢰와 동력을 다 잃은 대통령이 국가원수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수행해나갈 수 있을까?

탄핵이 기각되면 박 대통령은 그동안의 과오를 크게 반성하고 전혀 다른 대통령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그럴 자신이나 의사가 없으면 임기에 관계없이 스스로 물러나는 게 옳다. 역사에 길이 남을 퇴임 메시지를 통해 촛불과 태극기의 화해, 갈등의 통합을 도모하는 건 박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까지 보여온 그 한결같은 애국심, 독보적 나라사랑의 자세가 필요한 것은 이 대목이다. 그러는 것이 애자(哀者), 곧 자애로운 자의 승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박 대통령 스스로도 최종 의견서에서 “앞으로 어떤 상황이 오든 소중한 우리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해 갈라진 국민들의 마음을 모아 지금의 혼란을 조속히 극복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나가겠다”고 말한 바 있다. fused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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