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의 버크셔해서웨이가 대주주로 있는 크래프트하인즈가 유니레버에 대한 거액의 베팅을 이틀 만에 포기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 굴지의 식품 대기업 크래프트하인즈는 1430억 달러(약 164조4500억 원)에 유럽을 대표하는 소비재기업 유니레버를 인수한다는 계획을 철회했다고 19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이는 인수 계획을 공식적으로 인정한지 이틀 만에 물러선 것이다. 크래프트는 지난 17일 유니레버에 인수 제안을 했으나 거절당했다며 계속해서 인수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크래프트가 유니레버에 제시한 인수가는 보다폰이 1999년 독일 만네스만을 1720억 달러에 인수한 이후 역대 두 번째 인수·합병(M&A) 규모다.
그러나 크래프트는 이날 유니레버와의 공동 성명에서 “우리는 평화적으로 두 회사의 합병 제안을 철회하기로 합의했다”며 “양사는 서로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크래프트는 유니레버의 문화와 전략, 리더십을 최대한 존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수가 성공했다면 네슬레에 이어 세계 2위 소비재 그룹이 탄생했을 것이라고 FT는 전했다. 크래프트는 ‘오스카 메이어 베이컨’과 ‘하인즈 케첩’ ‘크래프트 마카로니’ 등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으며 유니레버는 ‘도브 비누’ ‘헬만 마요네즈’‘립튼 차’ 등으로 유명하다. 유니레버는 매출 기준으로 네슬레와 펩시코, 몬델리즈인터내셔널에 이어 세계 4위 포장식품 판매업체이며 크래프트는 5위다. 또 유니레버는 생활용품 분야에서도 미국의 프록터&갬블(P&G)에 이어 세계 2위다.
그러나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크래프트 대주주인 버크셔해서웨이와 브라질 사모펀드 3G캐피털의 수장인 워런 버핏과 호르헤 파울루 레만은 지난 주말 논의에서 유니레버 인수전이 장기적으로 대중에게 노출되면 크래프트에 득보다 실이 더 많다는 결론을 내려 인수 시도를 철회하기로 했다. 버크셔해서웨이와 3G캐피털의 크래프트 지분은 양사 합쳐 약 50%에 이른다.
다른 소식통은 인수가 진행됐다면 막대한 자금을 지원할 것으로 예상됐던 버핏과 레만이 영국 정치인들의 적대적인 반응에도 부딪혔다고 전했다. 영국 정부는 일자리 상실 등의 이유로 유럽연합(EU) 탈퇴인 브렉시트 이후 외국기업에 자국 대기업이 인수되는 것을 우려해왔다. 한 소식통은 “크래프트는 유니레버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등 많은 양보를 할 준비가 돼 있었다”며 “그러나 너무 일찍 노출돼 협상을 진행하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유니레버의 폴 폴먼 최고경영자(CEO) M&A의 대가인 버핏과 레만이 뒤에서 버티고 있는 크래프트의 인수 시도를 물리친 최초의 소비재업체 리더로서 평판이 올라가게 됐다고 FT는 평가했다. 유니레버는 17일 “크래프트의 현금과 주식을 결합한 인수 제안은 자사 가치를 너무 저평가한 것”이라며 “이는 재무적으로나 전략적으로 우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거절했다.
그러나 이번 실패에도 크래프트의 대형 M&A 모색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소비재업계의 성장 둔화가 계속되면서 M&A를 통해 비용을 절감해야 한다는 압력이 커지고 있기 때문. 벌써 미국 스낵업체 몬델리즈인터내셔널이나 시리얼업체 제너럴밀즈가 인수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고 FT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