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유치원생 두 딸아이와 함께 흥얼대던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의 주제가다. ‘호주머니 속의 괴물’ 포켓몬스터가 모바일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고’로 또다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대학생이 된 큰아이는 희귀한 캐릭터가 많이 출현한다는 경복궁, 덕수궁, 이수역 등 서울 곳곳을 헤매다니고 있다(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허공에 손짓을 해대면서). 뿔카노 에레브 탕구리 루주라…. 잡아 온 괴물 이름들도 하나같이 우습다.
2주일 만에 기어이 사달이 났다. 열이 펄펄 끓고 팔다리가 쑤신다며 힘들어했다. 내친김에 한약을 먹일 요량으로 집 근처 제기동의 ‘서울약령시’를 찾았다. 한의원과 한약방이 밀집해 있는 이곳에선 목적에 맞게 잘 찾아 들어가야 한다. 한의사가 있어서 진단과 처방, 조제가 가능한 곳은 한의원이고, 한약업사가 한약서에 실린 처방이나 한의사의 처방전대로 한약을 혼합 판매하는 곳은 한약방이다.
골목을 한참 헤매다 지인이 추천한 한의원을 찾았는데, 출입문에 붙어 있는 ‘맞춤형 한약 다려 드립니다’라는 문구를 보고 그냥 돌아섰다. ‘다린’ 약을 먹고 어떻게 건강해질 수 있단 말인가! “한약 한 사발이 약효를 내기 위해서는 한지(韓紙) 3000장을 태워 달여야 한다”는 말처럼 한약은 ‘다리는’ 것이 아니라 정성껏 ‘달여야’ 한다.
우리말에는 의미가 전혀 다르지만 발음이 같거나 비슷해 표기하는 데 어려운 단어가 여럿 있다. 그중 ‘달이다’와 ‘다리다’가 대표적인데, 반드시 구별해 써야 한다. ‘다리다’는 ‘천, 옷 등의 주름이나 구김을 펴고 줄을 세우기 위해 어떤 도구로 문지르다’라는 뜻의 동사다. 요즘엔 대부분 다리미를 쓰고 있지만 지난날엔 화로 속에서 뜨겁게 달궈진 인두로 구김을 폈다. 인두로 한복 동정을 다리며 옛날이야기를 해주시던 외할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친근한 말맛의 ‘대리미’, ‘대림질’ 등은 강원도와 경상도 일부 지역의 사투리다.
‘달이다’는 ‘끓여서 진하게 만들다’ ‘(약재 등에) 물을 부어 우러나도록 끓이다’를 뜻하는 동사다. “감기로 목이 붓고 아플 때는 말린 도라지 뿌리와 감초를 달여 먹으면 좋다” “온 집 안이 장 달이는 냄새로 진동했다”처럼 활용된다.
‘절이다’와 ‘저리다’도 발음은 같지만 뜻이 완전히 다르니 잘 가려서 써야 한다. ‘절이다’는 ‘푸성귀나 생선 따위에 소금기나 식초, 설탕 등이 스며들어 간이 배다’라는 뜻을 가진 ‘절다’의 사역형 동사다. ‘저리다’는 “손발이 저려 밤새 한숨도 못 잤어”처럼 근육이나 뼈마디가 오래 눌려 피가 잘 통하지 못해 감각이 둔하고 아리다는 의미의 형용사다.
국내외 악재로 서민들의 살림살이에 주름이 깊어지고 있다. 옷의 주름은 다리미로 편다지만, 살림살이 주름은 어찌할지 걱정이 크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서, 주부들은 살림살이가 좋아져서 눈가에 주름이 생길 만큼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