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자산의 대명사인 금값이 심상치 않다. 난민과 일부 이슬람 국적자의 미국 입국을 일시 제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反)이민 행정명령 서명으로 정치적 혼란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투자 자금이 안전자산인 금으로 다시 몰리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내세운 대규모 감세와 인프라 투자 기대감에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 증시에서는 다우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2만 달러 선을 돌파했다. 그러나 반이민 행정명령 조치와 함께 정치적 혼란이 커지면서 금융시장에서 ‘트럼포비아’가 급부상하고 있다. 트럼포비아는 ‘트럼프(Trump)’와 ‘공포(phobia)’의 합성어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우는 트럼프에 의해 조성되는 공포를 의미한다.
금값은 1주일 만에 온스당 1200달러 대로 뛰었다. 6일 뉴욕상품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금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11.30달러(0.9%) 오른 온스당 1232.10달러로 마감됐다. 미국 대선 직후인 작년 11월 10일 이후 최고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책 불확실성, 반이민 정책에 따른 시장 불안, 유럽의 선거전망 불확실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금값은 세계 경제와 국제 정치의 ‘공포지수’로서 트럼프 정책의 향방과 진위를 신중하게 파악하려 하고 있다. 미국 상품 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따르면 1월 24일 현재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대규모 투기세력의 금 선물 순매수는 10만9407건으로 전주 대비 2366건 늘었다. 전문가들은 “투자자들이 트럼프 리스크를 경계해 새로운 금 매수를 늘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은 ‘무국적 통화’로서 일반적으로 기축 통화인 달러와 반대의 가격 흐름을 보인다. 그 한편으로 금은 이자가 붙지 않는 만큼, 현재의 경기 확대 국면에서 금리 인상이 예상되는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을 고려하면 하락 기조여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금값이 오르는 것은 트럼프의 외교 자세와 반이민 정책 등이 리스크가 되어 세계 경제를 냉각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시장에 팽배하기 때문이다.
현재 시장이 주목하는 건 트럼프 새 정부의 이달 미 의회에서의 국정 예산 연설과 이스라엘과의 정상 회담이다. 국정 연설은 트럼프가 발표한 대규모 감세와 인프라 투자의 실행 가능성을 판단하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의 연설을 호재로 주가 상승, 달러 강세로 전환되거나, 혹은 실망해 주가 하락, 달러 약세로 돌아설 것인지가 관건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간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금에 매수세가 유입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트럼프는 텔아비브에 있는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예루살렘은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등 세 종교의 성지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서로 수도로 삼기 위해 강력히 대립하는 곳이다. 이런 가운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자치구인 요르단강 서안 지역에 유대인 정착촌을 확장하기로 하면서 국제 정치와 중동 정세의 균형을 무너트릴 수도 있는 복잡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닛산증권의 기쿠가와 히로유키 수석 애널리스트는 “트럼프가 이스라엘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예루살렘으로의 대사관 이전과 친 이스라엘 외교 자세를 명확하게 하면, 아랍 등 이슬람국가 등의 반발은 불가피해 서구에서의 테러 우려도 강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제 정치의 불안정과 혼란은 서방 세계의 증시 하락과 달러 약세를 유발하고 금값 상승을 부추긴다. 따라서 강한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은 차치하고, 상승하는 금값은 시장이 트럼포비아와 정치적 혼란을 경계하는 증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