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이민’ 행정명령에 제동을 걸자 미국 정부가 이슬람권 7개국 국적자들에 대한 입국금지 조치를 일제히 중단했다. 하지만 미국 법무부가 법원의 명령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해 반이민 행정명령을 둘러싼 미국 내 갈등은 오히려 격화되는 양상이다.
국무부는 4일(현지시간) 전날 법원의 결정에 따라 유효한 미국 입국 비자를 소지한 사람들은 미국에 들어올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시애틀 연방지법은 전날 반이민 행정명령의 효력을 미국 ‘전역’에서 즉각 중단할 것을 결정했다. 헌법 위반이자 경제에 타격을 주는 조치라는 게 결정 이유다.
미국 국무부도 반이민 행정명령 중단으로 취소됐던 비자 6만여 개를 원상으로 회복시켰다. 국토안보부도 반이민 행정명령에 따라 취해진 모든 조치를 유보한다고 밝혔다. 국토안보부는 성명에서 “행정명령에 따라 취해진 모든 조치, 특히 특정 여행자를 거부한 운송규칙을 유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항공사들은 미국행 비행기에 7개국 국적자들의 탑승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즉각 반발했다. 미 법무부는 이날 저녁 시애틀 연방지법의 결정을 무효로 해달라며 연방 항소법원에 항소장을 냈다. 전날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가능한 한 이른 시일에 법무부가 법원 명령의 효력정지를 긴급 요청해 합법적이고 적절한 대통령 행정명령을 방어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판사가 (입국) 금지를 해제했기 때문에 불량하고 위험한 많은 사람이 미국으로 쏟아져 들어올지도 모른다”며 “정말 끔찍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테러 방지를 이유로 이라크·시리아·이란·수단·리비아·소말리아·예멘 등 테러위험 이슬람권 7개국 국적자의 미국 입국 및 비자발급을 90일 동안 중단하고, 난민 입국을 120일 동안 불허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후 전 세계 주요 공항에서 해당 이슬람 국가 국민의 미국행 항공기 탑승이 거절되고 난민이 공항에 억류되는 등 대혼란이 발생했다.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이번 행정명령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졌다.
반이민 행정명령에 따라 미국 여론도 분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날 공개된 미 CBS방송과 여론조사기관 SSRS의 공동 여론조사(2월 1~2일, 성인 1019명 대상)에서 난민과 이슬람권 7개국 국적자의 미국입국을 한시 금지한 이번 행정명령에 찬성률은 45%, 반대율은 51%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CBS는 4일(현지시간) 중간지대가 거의 없는 이런 조사 결과를 지적하면서 “미국은 정치적 노선을 따라 극명하게 쪼개졌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