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전업 투자자로 활동 중인 손모(47) 씨는 매일 아침 여러 증권사의 종목 리포트를 유료로 받아보고 있지만 투자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이같이 토로했다. 그는 “기관투자자는 해당 리포트를 작성한 애널리스트와 직접 통화도 하고 브리핑을 들으면서 리포트를 깊이 있게 볼 수 있겠지만 우리 같은 일반투자자는 리포트에 명시된 투자의견과 목표주가, 요약된 투자포인트가 전부다. 증권사별로 기준이 다 달라 매일 아침 분석에 애를 먹는다”고 말했다.
2일 이투데이가 국내에서 종목 투자리포트를 내는 증권사 44곳의 최근 투자의견 등급 현황을 전수조사한 결과 ‘매수(BUY)’, ‘중립·보유(HOLD)’, ‘매도(SELL)’ 3단계로 가장 단순화한 투자의견을 내는 곳은 9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증권사들은 투자의견 단계 책정 기준과 표현 방식이 모두 달랐다.
미래에셋대우와 유진투자증권은 시장 대비 20% 이상 주가 상승이 예상되는 종목에 ‘매수’ 등급을 매기고 있다. 반면 대신증권과 교보증권, KB증권은 시장수익률 대비 10% 이상 상승이 예상되면 ‘매수’ 등급을 부여하고 있다.
수익률이 -20% 이하로 내려가야 매도의견을 내는 증권사가 있는 반면, 5% 미만이면 사실상 ‘매도’로 간주하는 증권사도 있어 편차가 컸다. 키움증권과 신한금융투자는 종목의 향후 수익률 전망치가 각각 -20%, -15% 이하로 내려갔을 때 ‘축소’ 등급을 매기지만, KTB투자증권은 5% 미만일 때 ‘REDUCE’ 등급을 매겨 매도를 권하고 있다. KTB증권에서 REDUCE 아래 등급은 ‘SUSPENDED’로 주가 분석을 잠정적으로 중단한다는 의미다.
전망치를 내는 기간도 각각 달랐다. 이베스트투자증권, 유안타증권, 동부증권 등은 향후 12개월간 주가 전망을 기준으로 잡고 있었다. 하이투자증권, HMC투자증권, SK증권 등은 기간 기준이 6개월이다.
각 증권사의 투자등급은 최소 3개에서 많게는 5개까지 나뉘었다. 단계별로 붙은 등급 이름도 제각각이다. 키움증권은 ‘BUY(매수)-Outperform(시장수익률 상회)-Marketperform(시장수익률)-Underperform(시장수익률 하회)-SELL(매도)’ 5단계로 분류하고 있다. 반면 삼성증권은 ‘BUY-HOLD-SELL’ 3단계다. 이외에도 STRONG BUY(적극매수), Trading BUY(단기매수·유지), Underweight(비중축소) 등 용어가 쓰인다.
같은 증권사들에서 나온 산업·업종 보고서의 투자의견은 전부 3단계로 ‘매수-보유-매도’로 단순화돼 있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복잡하다.
A증권 애널리스트는 “‘매수’ 의견이 아닌 보고서는 사실상 전부 ‘매도’로 봐도 될 만큼 애널리스트들조차 투자의견에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일반투자자들은 아직 이런 등급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최근 금융당국에서 매수 일색인 증권가 리포트 현황을 지적하고 매도의견 비율을 높이라고 강제하면서 일부 증권사가 매수와 매도 사이 투자의견 등급을 세분화하는 ‘꼼수’를 쓰기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B증권사는 지난해부터 금융당국에 보고하는 투자의견 비율 통계를 ‘매수-중립-매도’ 3단계로 축소했다. 다만 실제적으로는 투자의견 5단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C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회사별로 투자가치와 비중을 어떻게 가져가느냐에 따라 기준이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이는 투자자들이 검토해서 개별적으로 신뢰도를 부여할 사안”이라면서도 “종목리포트 전반의 신뢰도가 떨어져 오히려 시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기준 등을 재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