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금] ‘러시아 해킹’ 벌을 줄까 보답할까, 트럼프의 고민

입력 2017-01-25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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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가 1월 20일 마침내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했습니다. 60여 명에 달하는 민주당 의원들이 취임식에 불참하고, 취임식 다음 날 워싱턴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백만 명이 넘는 여성들이 여권운동과 반트럼프 시위를 하는 가운데 취임한 트럼프는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낮은 지지율과 무거운 짐을 지고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미국 우선주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슬로건으로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은 분열된 미국을 치유하는 것을 비롯해, △오바마 케어 건강보험을 폐기하고 새로운 보험으로 대치하는 일 △불법 체류자 추방 △멕시코 국경선에 담을 쌓는 일 △ISIS와의 전쟁 △직업 창출 △세제 개혁 △무역 및 대외정책 변경 등 선거운동 기간에 공약한 정책을 어떻게 시행하느냐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을 구체화해야 하는 중요성 못지않게, 어쩌면 가장 급한 문제 중의 하나가 러시아와의 매듭을 푸는 것입니다.

러시아가 수년 전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불거진 미국과 러시아의 불화는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러시아가 이메일 해킹을 통해 미국 대선에 불법 개입한 뒤 더욱 깊어졌습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임기 막판에 러시아 외교관을 대거 추방하고 러시아에 대한 경제 보복 조치를 추가했습니다.

트럼프 취임식에 불참한 민주당 의원 수를 닉슨 이래 최대로 늘린 촉발점도 러시아의 이메일 해킹이었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따라 민권운동을 했던 존 루이스 하원의원이 NBC 인터뷰를 통해 “러시아가 이메일을 해킹해 트럼프의 선거를 도왔기 때문에 트럼프의 대통령 적법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취임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말하자 트럼프가 트위터를 통해 루이스를 공격하고 여기에 분개한 민주당 의원들이 루이스와 연대감을 표시하기 위해 취임식에 불참한 것입니다.

이메일 해킹이 큰 파문을 일으킬 것을 계산하지 않았을 리 없는 러시아가 이것을 감안하고 해킹한 것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그만큼 절실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거 소련의 영화를 꿈꾸는 푸틴으로서는 경제가 어려워지고 세계 무대에서 정치적 힘도 약화한 마당에 트럼프가 당선하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수월해질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공개적으로 푸틴을 높게 평가하고 푸틴과 좋은 관계에 있는 것이 정치적 자산이라고 말하는 트럼프는 러시아 해킹이 없었으면 거리낌 없이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파격적으로 밀고 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러시아가 해킹의 주범이라는 것을 시인한 이상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의회가 이것을 용인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민주당은 물론 존 매케인이나 린지 그램 같은 공화당 상원의원도 앞장서서 러시아 해킹 사건을 특별조사할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취임 후 조사팀을 만들어 90일 이내에 사건 내용을 밝히겠다고 말했습니다.

러시아의 이메일 해킹이 트럼프를 당선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데서 트럼프는 심리적 발목을 잡히고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있습니다. 트럼프와 트럼프 사람들은 러시아의 이메일 해킹이 트럼프를 당선시키는 데 도움을 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고, 실제로 러시아의 이메일 해킹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주었다는 객관적인 증거는 찾을 수 없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다자간 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공식화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워싱턴D.C/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다자간 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공식화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워싱턴D.C/AFP연합뉴스

러시아의 이메일 해킹은 힐러리의 선거운동본부장인 존 포데스타와 민주당 지도부 간에 오간 이메일 내용입니다. 힐러리가 대통령 후보로서 불안하고 경쟁력이 약하다는 내용을 비롯해 중립을 지켜야 할 민주당 지도부가 후보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를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힐러리를 지원한 내용, 그리고 민주당 전략가로 CNN 논객인 도나 브라질이 CNN 토론회 질문 내용을 사전에 힐러리에게 전달한 내용 등입니다. 이메일 내용이 결정적인 타격을 준 것은 없지만 힐러리의 이미지를 약화시키고, 특히 버니 샌더스 지지자들의 이탈을 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정에 불과하고 객관화할 수 있는 증거는 아닙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을 비롯한 10여 개 정보기구들이 연합해 이메일 해킹 당사자가 러시아라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러시아 배후를 부인해온 트럼프가 공개적으로 시인한 것은 취임하기 일주일 전이었습니다. 정보기구 책임자들로부터 비밀문서 브리핑을 받은 트럼프는 더는 러시아의 개입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보 책임자가 트럼프에게 정보 브리핑을 한 뒤 제출했던 비밀서류 내용이 누설되어 언론에 보도되면서 그동안 불편한 관계에 있던 정보기구와 트럼프의 관계가 더욱 악화해 감정의 골을 팠습니다. 언론에 누출된 비밀서류 내용은 트럼프가 미스 유니버스대회를 위해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창녀들과 비밀 파티를 한 것을 러시아 정보기관이 녹화해 그동안 트럼프를 협박하는 도구로 사용해왔다는 것입니다.

인터넷 신문 버즈피드와 CNN 보도로 불거진 이 내용은 트럼프를 격앙케 했고, 트럼프는 기자회견을 통해 이것이 날조된 내용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CNN 기자에게는 질문권을 주지 않는 등 격하게 대립했습니다. 트럼프에 관한 내용은 미국 정보기관이 확인한 내용이 아니고 영국 정보원이 트럼프 반대자들의 의뢰를 받아 작성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파장을 더욱 크게 한 것은 트럼프가 기자회견에서 비밀문서를 언론에 누출한 당사자가 정보기관일지도 모른다고 말하면서 이 수법이 나치 시대의 수법과 비슷하다고 말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정치적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대통령이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데 오른팔 역할을 하는 정보기관을 비밀정보의 누출자라고 지목하고 나치 수법을 빗댄 것이 정보기구 당사자들을 분노케 하고 의기를 꺾었습니다. 이로 인해 이임하는 존 브래넌 CIA 국장과 트럼프 간에 공개적인 설전이 오가는 전례없는 사태까지 발생했습니다. 새로 출범한 폼페오 CIA 국장 체제와의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트럼프가 대통령 취임 후 집무 첫날 처음으로 방문한 곳이 CIA 본부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와 사업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고 푸틴과도 인간적 교류가 있는 렉스 틸러슨 전 엑손모빌 회장을 국무장관으로 임명하고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틸러슨 국무장관 지명자가 러시아와 가깝다는 데서 인준 청문회가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ISIS나 시리아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어떻게든 해야 하고, 그렇다고 해서 서둘러 밀고 나갈 수 없는 상황인 트럼프는 절충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입니다. 너무 서둘러 실마리를 잘못 풀면 굵직한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취임 초기의 동력을 저해할 수 있고, 러시아 해킹 문제가 오랫동안 발목을 잡는 정치적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기를 도와준 러시아에 어느 정도의 벌을 주고 어떤 방법으로 친구 관계를 맺을지는 정치적 부채와 자산을 함께 절충하는 외교 줄타기가 될 것입니다.

러시아 이메일 해킹은 미·러 양국의 관계 개선에 장애물이 되고 있지만 트럼프가 역이용할 이점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트럼프가 러시아에 약점을 잡힌 것이 없다면 이메일 해킹이 러시아의 양보를얻어내는 협상 카드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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