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중국과 대만 등 아시아 자본이 일본 산업계의 투자 큰 손으로 떠올랐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대규모 일본 기업 인수·합병(M&A)에 대한 전통적인 장벽이 낮아진데다 전 세계 무대에서 존재감을 키운 아시아 자본이 지난해 일본 내 해외 M&A 활동을 주도했다고 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기업 인수합병을 중개하는 전문회사 레코프(Recof)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 기업들의 일본 기업 M&A(인바운드 거래) 건수는 201건으로 전년대비 2.4% 줄어들었다. 그러나 전체 거래 규모는 2조5600억 엔(약 25조3100억원)으로 2015년보다 2.5배 급증했다. 전체 투자액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아시아 바이어가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아시아 기업들의 일본 투자액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1조 엔을 돌파했다. 아시아 자본 중에서도 중국과 대만이 지난해 가장 눈에 띄는 M&A 활동을 펼쳤다. 레코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과 대만 자본은 총 51건의 일본 기업 M&A를 진행, 여기에 9332억 엔을 지출했다. 이는 M&A 건수나 지출액 기준 모두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이는 미국의 일본에 대한 투자 규모보다 약 5배 많은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애플 하청업체로 유명한 대만 혼하이정밀공업의 일본 샤프 인수다. 혼하이는 지난해 100년 역사의 샤프를 35억 달러에 인수했다.
업계에서는 혼하이의 샤프 인수가 사실상 오랫동안 해외자본의 일본 기업 합병에 배타적이었던 일본 사회의 심리가 바뀌는 계기가 됐다고 보고 있다. 그간 일본 정부는 자국이 보유한 핵심 기술이 해외 기업에 넘어가지 않도록 경영에 개입하는 등 총력을 기울여 왔다. 실제로 2012년 일본 민관 공동투자펀드인 산업혁신기구(INCJ)가 미국 사모펀드 KKR이 일본 반도체업체 르네사스 일레트로닉스 지분 인수를 방해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에도 아시아의 대(對)일본 투자 흐름이 비슷하게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M&A 전문가들은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약세를 지속하면서 앞으로 더 많은 일본 기업들이 잠재적 M&A 대상 기업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소규모 일본 상장사들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돼 있는데다 일본 사회의 인구고령화로 회사를 처분해 연금을 확보하길 원하는 고령의 기업 오너들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점도 일본 M&A 증가세를 점치는 이유로 꼽힌다.
법률회사 시몬스앤시몬스의 리차드 크라머 일본 부문 책임자는 미쓰비시와 미쓰이와 같은 주요 상사 업체들 사이에서 잠재적인 M&A 대상기업이 나올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