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우리는 한 가계와 나라 경제를 비슷한 단위로 이해한다. 어떤 가계가 능력을 벗어나는 지출을 할 때 파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라 경제를 바라본다. 이 책은 그런 명백한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긴축을 주장하는 근거는 이 책에 정확하게 소개되어 있다. “긴축은 임금과 가계 그리고 공공 지출 삭감을 통해 국가 경제의 경쟁력을 회복한다는 취지의 자발적 디플레이션 정책이다.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방법은 국가 예산, 부채 그리고 재정 적자를 줄이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렇게 명백한 사실에 대해 저자는 일반적인 생각과 다른 주장을 내놓는다. “그리스의 경우를 제외하면, 과도한 지출에서 비롯된 국가 부채 위기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국가가 대신 책임을 떠맡아 주고 있는 은행들이다. 우리가 이런 상황을 ‘국가 부채 위기’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 자체가 ‘교묘한 속임수’의 정치가 작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저자의 주장을 접하다 보면 어떻게 이런 주장을 펼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오늘의 위기는 은행권이 만든 위기가 국가 부채 문제로 전화된 것이다”, “부채가 너무 많으면, 지출을 멈춰라. 이 말만 놓고 보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사태의 본질을 충분히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등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미국의 지식 사회도 약 70% 이상이 진보적인 색채를 가진 지식인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저자도 그런 대열에 속한 지식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주장에는 개인적 경험도 짙게 배어 있다. 1967년 스코틀랜드 던디의 가난한 가정에서 복지정책의 혜택을 받고 자란 저자는 긴축이야말로 한 사회의 가난한 사람에게 가장 큰 타격을 주는 정책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가 내놓는 대안은 결국 세금을 올리라는 것이다. 특히 금융제도와 상품들을 이용하여 급격하게 부를 늘린 소득 분위 최상층에 대한 증세를 적극적으로 검토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경제 위기와 고통을 공평하게 나누는 길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져 있다.
원인이 무엇이든 가계와 국가는 비슷하다. 가계의 부채든 국가의 부채든 부채가 늘어나면 신용도가 하락하고, 더 이상 대출을 받을 수 없다. 돈을 빌려주는 은행들이 분수를 넘어서는 지출을 하는 가계나 국가에 돈을 계속해서 줄 의향은 없을 것이다. 지출이 수입을 구조적으로 초과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위기가 오게 마련이다. 결국 가계든 국가든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씀씀이를 줄이는 것밖에 없다. 저자는 “부채가 국가의 대차대조표에 기재된 이상, 부채 감축은 반드시 필요하며 그 감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결국 성장을 해치게 된다”는 긴축옹호론자의 주장은 진실이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어떻게 이런 주장을 펼칠 수 있을까. 이와 유사한 주장들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도 공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세금을 올려서 문제를 해결하자는 그런 류의 주장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