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나치 시절 약 50만 명의 독일인들이 80여 개 국가로 망명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1949년 독일연방공화국이 창설될 때 독일인들은 ‘기본법’(헌법)에 자신들의 과거 경험을 일깨워 ‘망명 보호법’을 명시했다. 과거 수많은 나라에서 독일인들을 받아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독일의 망명자 보호법은 ‘정치적 망명’이 아닌 ‘경제적 난민’도 대량으로 끌어들이는 ‘자석’ 역할도 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동구권의 민주화 확대, 1990년 독일 통일, 1991년 소련연방 해체 등의 시기에는 수백만 명의 동구권 출신 독일계 후손과 난민이 독일로 이주했다. 1990년대 초반 유고슬라비아 내전 시기에는 유고 난민 약 100만 명이 독일에 왔다. 유고 내전이 심각했던 1992년 한 해 독일에 온 유고 난민은 약 40만 명이다. 독일은 통일 후유증으로 스스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난민들에게 관대했고, 난민들은 독일에 잘 적응하고 정착했다.
나치 시절 ‘게슈타포’의 공포를 경험하고, 동·서독 분단 시절 동독 국가정보기관 ‘슈타지’의 만행을 경험한 독일인들은 사생활 침해에 매우 민감하다. 독일엔 강력한 ‘사생활 정보 보호법’이 있어, 도청이나 감시 등에 많은 제약이 따른다.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공공장소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는 것에도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현재 독일 전역의 공항과 열차역 등 공공장소에 약 10만 대의 CCTV가 설치되어 있으나, 상당수는 낙후되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변했다. 2016년 독일은 수많은 테러를 경험했다. 대부분의 테러범들은 독일이 보호해주려고 받아들인 난민 출신이었다. 2016년 신년 쾰른 대성당 앞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1000여 명의 북아프리카 출신 난민들이 독일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과 절도 행위)부터 2016년 12월 19일 12명의 사망자와 48명의 부상자를 낸 베를린 크리스마스 시장 트럭 테러 사건까지, 그간 독일이 경험해 보지 못한 테러 사건들이 발생했다. 2016년 독일 전역에서 사망과 부상 등 수많은 인명피해를 낸 과격한 이슬람 난민 테러 사건은 10건, 테러 준비 중 사전 발각된 사건이 8건이다.
독일에 1990년대 중반 이후 줄어들던 난민 유입이 다시 증가하기 시작한 것은 2008년부터다. 시리아 내전이 격화하면서 2013년 독일에 망명을 신청한 난민은 12만8000명, 2014년 20만2000명, 2015년에 유입한 난민 약 110만 명 중 공식 망명 신청자는 89만 명으로 확인되었다.
난민 유입 수와 망명 신청자의 차이가 발생한 이유는 2015년 9월 독일에 한꺼번에 대량으로 난민이 유입되면서 이중 등록, 등록 후 다른 유럽 국가로 이전 또는 소재 파악을 할 수 없이 사라진 경우가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2015년 독일에 유입된 난민은 시리아(37%), 아프가니스탄(13%), 이라크(11%) 순이다. 이란, 알바니아, 코소보, 파키스탄, 에리트리아, 세르비아, 마케도니아가 그 뒤를 이었다.
2016년 난민의 ‘발칸루트’가 차단되고 EU-터키 간 ‘난민협정’이 체결된 후 난민 유입이 줄어 11월까지 독일에 유입된 난민 수는 약 31만 명이다. 독일에 유입된 난민 중 약 70%는 남성, 약 30%가 여성이다. 난민 전체 남성 중 74%는 30세 미만으로, 18~24세의 청년이 가장 많다. 난민의 약 70%는 여권을 소지하지 않고 오기 때문에 신원 파악과 공식 망명 신청, 서류 제출까지는 수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난민이 독일에 도착하면 ‘연방이민·난민청’에 등록되고 난민 수용소에 거주하면서 신원이 확인되면 독일 16개의 연방주로 분산된다. 난민은 체류할 연방주에 도착한 후 그곳에서 망명신청서를 제출하게 되는데, 신청서에 필요한 서류 수집에 또한 많은 시간이 걸린다. 망명 신청서를 제출한 후에도 결정까지는 수개월 또는 1년여간 기다려야만 한다.
그동안 난민 수용소 이탈자, 수용소 내 집단 폭력, 절도 등 각종 범죄 연루, IS 추종자 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난민은 대부분 교육 수준이 낮고 문맹자도 상당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경제 전문가들에 의하면 난민 100만 명을 독일에 도착한 후 6년 이내에 직업교육 등을 통해 일자리를 알선하고 정착시키려면 약 9000억 유로의 비용이 소요된다.
망명 신청에 대한 결정은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 망명 허가다. 망명 허가를 받으면 3년간의 체류를 보장받고(연장 가능), 독일인과 같은 각종 사회보장 지원금을 받게 된다. 또한 자국에 있는 가족을 독일에 초청할 수 있다. 둘째, 망명은 불허하나 신청자의 개인적 사유(건강, 임신, 귀국 시 생명 위험 등)를 고려하여 자국에 송환하지 않고 독일 체류를 묵인한다. 묵인의 경우, 독일 체류 1년을 보장(연장 가능)하나 가족 초청은 불가하다. 셋째, 망명 불허다. 망명 불허로 판결된 자는 자국으로 송환된다.
독일에 난민 유입이 급증하면서 연방하원은 2015년 10월과 2016년 2월 두 번에 걸쳐 망명법을 개정했다. 주요 개정 내용은 망명 불허 대상인 ‘안전한 국가’군에 알바니아, 코소보, 몬테네그로 등 발칸 지역 국가와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등 북아프리카 국가들을 포함해 불허 대상 국가를 확대했다. 또한 난민 수용소 체류 중 현금 대신 물품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2016년에 판결된 망명 결정에서는 망명 허가 38%, 체류 묵인 25%, 나머지는 망명 불허로 송환 대상이다. 난민 송환에는 상대 국가의 협력이 필요하지만 대부분 해당 국가는 협조에 미온적이거나 아예 협조를 거부하는 국가가 많아 실제로 난민을 송환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매우 어렵다. ‘베를린 크리스마스 시장 테러’ 범인인 튀니지 출신 난민은 망명이 거부된 송환 대상이었으나, 튀니지 정부의 협조 거부로 독일에 체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2016년 12월 베를린 테러 사건은 독일 사회를 크게 변화시키는 기점이 되었다. 난민에 관대했던 예전의 독일이 더 이상 아니다. 독일 정부는 12월 23일 공공장소에 감시카메라 설치 확대를 결정했다.
또한 2017년 1월 중 ‘테러 대처 강화 법률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이 법률안에는 난민 송환 강화, 국경 검문 및 망명 신청 심사 강화, 16개 주정부 간의 안보 수준 동일화 및 정보 교류 강화, 유럽 국가 간 정보 교류 강화와 공동 정보기관 설치 제안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난민 증가와 극단주의 이슬람 테러 발생은 독일 사회의 분열과 극우파의 증가를 가져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 지금처럼 극우파 지지가 많았던 적은 없다. 극단주의 이슬람 테러는 논리와 진실에 대한 이해보다는 감정과 풍문에 의지하는 사람들을 확대시키고, 불안과 공포는 강력한 정치 선동주의자들을 지지하게 만든다. 자유와 개방된 사회규범을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원인이 된다. 극단주의 이슬람 단체와 극우파 정치단체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상호 의존과 공존관계에 놓여 있다. 한쪽이 강해지면 다른 편도 강해진다.
망명법과 안보 상황을 강화해도 부분적인 대처일 뿐이다. 중동지역에 전쟁이 종료되고 평화가 도래하기 전에는 난민의 유럽 유입 시도와 극단주의 이슬람 테러가 계속될 것이라는 핵심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