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문형표(60)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서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하라는 압력을 행사했다”는 진술을 받아낸 데 이어, 김재열(47) 제일기획 사장을 대상으로 고강도 조사를 벌이는 등 ‘박근혜 대통령-삼성’ 간 거래의 대가성 규명에 한발짝씩 다가가고 있다.
김 사장은 30일 새벽 4시 40분께 강도 높은 밤샘조사를 마치고 귀가했다. 이 부회장의 처남인 김 사장은 ‘장시호(37) 씨 회사를 지원 할 때 이 부회장과 상의했는가’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대기 중인 차량을 타고 떠났다. 자정이 넘은 시각 조서를 열람하기 시작한 김 사장은 15시간 조사를 받으면서 자신이 답한 내용에 문제가 없는지 꼼꼼하게 살핀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은 김 사장을 상대로 ‘비선 실세’ 최순실(60) 씨 일가에 특혜성 지원을 한 경위를 집중 추궁했다. 앞서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확보한 안종범(57)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수첩에는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독대한 지난해 7월 25일 ‘제일기획 김재열 사장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 협조 요청’이라는 지시 사항이 기재된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은 박 대통령이 안 전 수석을 통해 김 사장에게 최 씨 일가를 지원하라는 지시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이날 오전 10시 안 전 수석과 장 씨 등을 불러 해당 내용을 조사할 계획이다.
삼성 측이 삼성물산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의 찬성이라는 대가를 바라고 금전적 지원을 한 것으로 밝혀지면 삼성 역시 처벌이 불가피하다. 김 사장은 현재 참고인 신분이지만, 향후 수사과정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될 가능성도 있다. 김 사장에게 영재센터에 후원금 16억2800만 원을 내도록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는 장 씨와 김종(55)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은 현재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특검 관계자는 “기존에 검찰에서 기소된 부분에 대해서는 (이날 조사가) 보충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고, 다른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이 장 씨의 다른 혐의에 연루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특검의 뇌물죄 수사 첫 성과는 박 대통령으로부터 삼성 지원 지시를 받고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제일모직과의 합병에 찬성하도록 외압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있는 문 전 장관의 자백이다. 특검은 전날 문 전 장관에 대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국회증언감정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문 전 장관은 28일 새벽 특검 조사를 받던 도중 긴급체포됐다. 이후 문 전 장관의 태도는 바뀌었다. 문 전 장관은 국회 청문회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하라고 지시한 적 없다”고 진술한 내용을 번복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 전 장관은 지난해 메르스 사태 책임을 물어 장관직에서 물러났는데, 이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취임해 보은성 인사가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박 특검은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주요 피의자들의 발언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꾸준히 강조했다. 그 결과물이 문 전 장관에게 적용된 위증 혐의다. 특검 영장 1호에 위증 혐의를 명시한 것은 향후 특검 조사를 받는 피의자에게 위증에 대한 경고를 보내고, 필요한 자백을 받아내 신속한 수사를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문 전 장관의 구속 여부는 이날 오후 3시에 열리는 구속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통해 결정된다. 서울중앙지법 조의연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심리하며, 늦어도 31일 새벽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문 전 장관이 구속되면 특검 단계에서 핵심 피의자가 구속되는 첫 사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