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국남의 직격탄] ‘부산행’ ‘태양의 후예’와 2016년 한국

입력 2016-12-15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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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평론가

2016년 12월 9일 오후 4시 10분. “투표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총투표 수 299표 중 가 234표, 부 56표, 기권 2표, 무효 7표로 대통령 박근혜 탄핵소추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정세균 국회의장의 발표는 ‘촛불’과 함께 2016년의 대한민국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역사적 언표다.

2016년의 대한민국을 읽을 수 있는 단서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좋아했던 영화와 드라마 등 미디어 텍스트 역시 2016년의 대한민국을 읽는 기호로 기능한다. 영화와 드라마는 현실을 잘 투영하기 때문이다.

올해 관객들이 가장 많이 본 영화는 1156만 명이 관람한 ‘부산행’이다. ‘밀정’(970만 명), ‘터널’(712만 명) 등도 흥행에 성공했다. 가장 많은 사람이 시청한 드라마는 시청률 38.8%를 기록한 KBS 미니시리즈 ‘태양의 후예’다. ‘구르미 그린 달빛’(23.3%), ‘낭만 닥터 김사부’(22.8%) 등도 높은 인기를 얻었다.

“이 사람들 빨리 내보내야 해! 안 그러면 우리까지 위험해져!”(‘부산행’) “만약 제 남편이 살아 있으면 미안하지 않겠어요?”(‘터널’)…. 올해 흥행 영화들은 자신이 살기 위해 남을 사지로 내모는 일까지 서슴지 않고, 준공 한 달 만에 터널 붕괴 사고가 발생해 사람들이 죽어 가는데도 정부의 한심한 대처가 이어지는 내용들이 담겼다. 무능한 박근혜 정부의 폐해를 온몸으로 감내하면서 각자도생해야 하는 2016년 대한민국의 부조리한 현실과 맞닿아 있다.

“그들과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고 나와 내 가족, 강 선생과 강 선생 가족, 그 가족의 소중한 사람들,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는 일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태양의 후예’의 유시진 대위(송중기 분)는 죽음을 감수하며 전쟁터에 나가 평화를 지키고, 재난 현장에서 사람의 생명을 구한다. “보이지 않으니 더 화가 나 미칠 것 같았거든. 그러니 내 곁에 있어라.” ‘구르미 그린 달빛’의 왕세자 이영(박보검 분)과 역적 홍경래의 딸이 운명과 신분의 벽을 뛰어넘는 절절한 사랑을 한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들은 정의와 자유를 위해 죽음을 불사하거나 모든 조건을 뛰어넘는 순수한 사랑을 그린 2016년 대한민국 현실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판타지다.

올해 많은 사람이 열광한 영화와 드라마는 텍스트의 결이 현실과 판타지라는 양극단의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같다. 영화는 무능한 정부, 탐욕스러운 기업들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현실의 민낯을 포착했다. 반면 드라마는 노력만으로는 꿈을 이룰 수 없고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계급의 위력이 기승을 부리는 암담한 사회, 정의와 민주주의가 권력으로 인해 실종된 부패한 현실을 잠시 잊게 해주거나,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에 대한 희망을 다시 품게 하는 판타지를 담았다.

이처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투영한 영화와 드라마는 우리의 세계관을 형성하거나 왜곡하기도 한다. 미디어 텍스트의 메시지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수용자의 상황과 반응에 따라 다양하게 구성되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촛불을 든 사람을 비롯해 수많은 국민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서 자유와 정의가 살아 움직이는 대한민국을 꿈꿨으리라. 하지만 드라마를 즐겨 본다는 박근혜 대통령은 전혀 그렇지 않았나 보다.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 정지 직전 마지막으로 단행한 인사, 청와대 민정수석에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재임하며 특조위 해체를 주장해 숱한 비판을 받았던 조대환 변호사를 임명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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