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방적인 매수 리포트를 쓰는 애널리스트를 생각하다 엉뚱하게도 문득 1978년에 나온 세샘트리오의 ‘나성에 가면’이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중간생략’이라는 것 때문이다.
생산자에서 소비자 사이 여러 단계에 걸쳐 있던 유통단계를 중간 생략하고 유통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낸 아마존닷컴. 이후 중간생략은 여러 산업과 시장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스페인의 패스트 패션 브랜드 자라(ZARA)는 디자인 팀이 전 세계 대리점에 옷을 만들어 배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고작 2주에 불과하다. 경쟁업체인 미국의 갭(Gap), 스웨덴 에이치앤엠(H&M)보다 무려 12배나 빠르다. 비결은 중간 유통 단계를 대거 생략하고 기획 디자인 제조 공정을 통합한 데 있다. 이를 통해 자라는 빠르게 성장해 2000년대 들어 세계적인 브랜드로 올라섰다.
이렇게 경제 분야에서 일어난 중간생략은 이제 정치·사회 분야에서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국민과 정치 사이에 있던 여론조사기관, 전문가, 언론 등 소위 여론 주도층들도 브렉시트 투표를 통해 모두 중간생략이 됐다.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과정도 이와 같다.
중간 단계는 과거 지식과 정보가 일부에게 독점되던 시대에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불가결 존재다. 하지만 고등교육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고 인터넷 등을 통해 정보의 불균형이 사라진 이 시대에서는 중간 단계가 꼭 필요한 존재는 아니게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 전문가, 언론 등 주식시장과 투자자 사이에 있던 중간 단계 존재들은 이미 신뢰를 잃을 만큼 잃었고 투자자들에게는 꼭 필요한 존재도 아니다.
경제지표나 투자지표 등의 통계자료를 비롯해 웬만한 투자 정보는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아도 얻을 수 있고, 이를 분석하는 능력도 일정 수준 이상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애널리스트나 펀드매니저 등 정작 중간 단계 종사자들은 여전히 자신들만이 지식과 정보를 갖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 같다.
브렉시트 이후 일부는 “너희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한 거냐”고 주장한다.
중간 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이 옳고 상대방은 틀리다고 여전히 강요하지만, 점차 통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중간생략 시대는 설득의 시대다. 일부의 계층에서 자신들의 생각만으로만 다수를 이끌어 나갈 수 없는 시대인 것이다.
주식 투자 역시 마찬가지다. 정답은 없지만, 자신의 투자 이후 다른 사람들이 논리적인 설득 과정을 통해 따라와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가 자신들의 이익을 먼저 위한다면 투자자들은 따라올 리 없다. 자꾸 그렇게 신뢰를 잃어가면 결국 주식시장과 투자자 사이의 중간 단계에서 아예 사라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