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이런 그를 평소 아니꼽게 여기던, 시골 병원을 떠나고 싶어 안달이 난 철없는 한 후배 의사가 당장 숨이 넘어갈 듯이 다급한 환자를 앞에 두고 김사부에게 묻는다. “당신은 좋은 의사입니까, 최고의 의사입니까”라고. 그러자 김사부는 답한다. “지금 이 환자한테 절실히 필요한 건 이 환자에게 필요한 의사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아는 모든 걸 총동원해서 이 환자에게 필요한 의사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이들의 대화는 짧지만 꽤 강한 울림이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인 최순실 패거리의 국정 농단 사태로 집단 우울증에 걸릴 지경인 우리 국민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니던가.
매 주말 수백만의 시민이 두툼한 옷으로 중무장을 하고 동장군이 맹위를 떨치는 찬 거리로 나가는 게 자연스러운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그럼에도 이를 모르쇠로 일관하는 박근혜 대통령, 천연덕스럽게 시민들 틈에 섞여 촛불을 들고 “박근혜 하야·탄핵”만 외치는 무능한 정치인들. 매주 촛불 수는 늘어나는데 사태를 수습할 길은 요원하기만 하다.
불운했던 미국 8대 대통령 마틴 밴 뷰런은 “일을 제대로 하는 게 그렇게 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보다 쉽다”는 말을 남겼다. 미 독립선언서 서명 후 탄생한 최초의 대통령이자 최초의 비(非)앵글로색슨계 대통령이었던 뷰런은 앤드류 잭슨 전 정권에서 국무 장관과 부통령을 역임하면서 막후 정치 실세로서 ‘작은 마술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는 낙제생이었다. 그는 잭슨의 후광을 등에 업고 60%에 달하는 선거인단을 확보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런데 하필 그가 대통령에 취임하던 1837년, 미국은 역사상 첫 대공황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뷰런은 기업들의 무분별한 확장과 은행 대출 남발이 대공황을 초래했다고 보고 재정을 풀지 않고 전 정권의 긴축 정책을 그대로 답습했다. 그것이 되레 경기 침체를 악화시켰고 그의 재임 기간 미국 경제는 암흑기였다.
이런 가운데 별 볼일 없는 집안 출신이면서 귀족 행세를 하고, 백악관 보수 공사를 벌이는 등 사치가 화근이 돼 그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후일 미국민을 더욱 분개하게 만든 건 그의 화장대에서 나온 희귀 화장품들이었다. 2014년 백악관역사협회가 출간한 ‘백악관의 역사(White House History)’에 따르면 뷰런은 크림으로 된 코린트 오일, 빅토리아 여왕이 쓰던 고농축액, 농축 페르시안 에센스, 들장미에서 추출한 에센스 등 서민은 범접할 수 없는 고가의 사치품들을 썼다.
시대도 배경도 다른데 굳이 뷰런의 사례를 든 건 현재 우리 국민과 뷰런 시대 미국민의 한숨 이유가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어린 생명들이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생사의 갈림길을 오갈 때 ‘그분’은 관저에서 태평하게 올림머리를 하고 있었고, 금융위기의 끝자락에서 서민 살림은 더욱 팍팍해져 고통스러워 하고 있을 때 ‘그분’은 불법 의료 기술을 이용해 피부미용 시술을 받았다. 또 고산병 치료에 쓴다며 혈세로 발기부전치료제를 대량으로 구입했다고 한다. 이뿐인가. 비선 실세들의 국정 농단으로 국격이 추락한 것도 모자라 이에 연루된 대기업 총수들까지 줄줄이 청문회 현장에 불려나가 해외에 비웃음거리가 됐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그런다. “의사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건 딱 한 가지다. 오로지 환자를 통해서!”라고.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국민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해야 한다.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이유’를 똑바로 대지 못하겠다면 일을 제대로 했어야 했다.
당신은 대체 어떤 대통령인가! 좋은 대통령도, 최고의 대통령도 아니라면 적어도 국민에게 필요한 대통령은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이번 주말도 거리로 나설 촛불 민심이 안쓰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