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정식으로 취임하기도 전에 기득권을 심판하겠다는 당선인의 목소리는 공허해졌다. 트럼프가 내각을 기득권의 상징인 월가 출신 인사들로 꾸리면서부터다. 인사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곧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 주듯 대통령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 정부의 실체를 드러낸다. 인사를 통해 정부의 철학을 읽는다는 말은 그 뜻이다. 월가에 오래 몸담은 사람을 재무 장관, 상무 장관 후보에 각각 앉힌 트럼프 내각의 철학은 뻔하다. 금융 규제를 풀어 금융권과 대기업 밀어주기에 집중할 것이다.
단순한 말 바꾸기가 문제가 아니다. 비판의 핵심은 대선 기간에 월가를 비난했다가 이제 와서 월가 사람들을 요직에 기용한다는 괘씸함, 그 이상이다. 자신이 어떤 열망을 안고 당선됐는지를 잊은 행보이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발 금융위기의 피해자는 서민들이었다. 불황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은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만든 건 그 노동자들이다. 러스트 벨트(rust belt·쇠락한 중북부 공업지대)의 서민들 표가 없었다면 트럼프는 대통령이 될 수 없었다.
트럼프는 3~4%의 경제 성장률과 임금 인상, 양질의 일자리를 약속했다. 유능한 월가 출신 인사들이 이 공약들을 성공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경제는 정치의 결과다. 반(反)기득권을 외쳤던 유권자들을 배신하는 방식으로 경제가 살아날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