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공산혁명 지도자였던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타계 소식이 전해지자 각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애도의 뜻을 표하면서 고인의 죽음을 슬퍼했다. 그러나 일부 지도자들은 독재와 인권 탄압을 비난하는 등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백악관 성명에서 "역사는 한 인물이 그의 주변 사람들과 전 세계에 미친 엄청난 영향을 기록하고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약 60년간 미국과 쿠바의 관계는 불협화음과 상당한 정치적 불일치로 점철돼 왔다"고 지적한 오바마 대통령은 "재임 기간에 우리는 과거를 뒤로 하고 미래를 추구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자평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오늘 우리는 피델 카스트로의 가족들에게 애도를 보내고 쿠바인들을 위해 기도한다"며 "앞으로 우리는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미래를 바라볼 것이다. 쿠바인들은 미국에 그들의 친구와 파트너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에 비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피델 카스트로 사망!'이라는 짧은 글을 실었다.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서든 성명을 통해서든 더 이상의 언급을 하지 않았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성명에서 "카스트로 가족과 쿠바 국민들에게 애도를 전한다"며 "앞으로 쿠바인들이 평화롭게 번영하길 바란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퇴임 후 여러 번 쿠바를 방문하고 쿠바에서 카스트로와 만나기도 했던 카터 전 대통령은 "쿠바에서 그를 만났던 일과 그가 가졌던 쿠바인들에 대한 사랑을 기억한다"고 밝혔다.
미국 공화당의 다른 주요 인물들은 카스트로 전 의장의 사망에 대해 쿠바 독재자로서의 생전 행적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다. 공화당 대선주자였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텍사스)은 트위터로 "그의 죽음이 희생자 수천 명을 되살리지도, 그런 희생자들의 가족에게 안도감을 주지도 못한다"며 "오늘 우리는 그가 쿠바에서 행했던 잔혹한 공산독재에 맞서 외롭게 싸웠던 용감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기린다"고 밝혔다.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공화·캘리포니아)은 성명을 통해 "카스트로의 통치는 국내에서는 억압, 국외에서는 테러리즘 지원이라는 유산을 남겼다"며 "불행하게도 라울 카스트로 역시 자유를 바라는 쿠바 국민들에게는 더 낫지 않다"는 의견을 보였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은 관영 CCTV에 카스트로 전 의장을 '쿠바 공산주의의 창시자이자 우리 시대의 위대한 인물'이라고 칭하며 "역사와 사람들은 피델 카스트로를 기억할 것"이라고 애도했다. 관영 신화통신은 이날 카스트로 전 의장의 사망 소식을 속보로 전했고 CCTV 역시 카스트로의 생애를 소개하고 중국과 쿠바의 교류를 회고하는 영상을 반복해서 내보냈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2014년 7월에,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지난 9월에 각각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고인과 회담을 한 바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도 "쿠바 혁명 후의 탁월했던 지도자인 피델 카스트로 전 의장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삼가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메시지를 발표했다. 그는 "지난 9월 쿠바를 방문해 만났을 때 세계정세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말했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일본 언론들은 카스트로 전 의장이 자택의 정원을 일본식으로 꾸밀 정도로 일본과 가까웠으며 핵무기 철폐에도 관심을 가져 히로시마(廣島)를 방문하기도 했다고 일본과의 인연을 소개하기도 했다.
쿠바의 인권 탄압을 문제 삼아 지난 50여 년 간 쿠바와 서먹한 관계를 유지해온 유럽 국가들은 향후 쿠바와의 관계개선에 대한 기대를 나타냈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카스트로의 업적은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성명을 내고 "그의 동생 라울과 가족, 친구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면서 카스트로를 '역사적인 인물'로 평가했다. 모게리니 대표는 “카스트로가 전세계적인 불확실성의 시대, 쿠바 변화의 시대에 타계했다”며 지난 3월 EU와 쿠바가 '정치적 대화와 협력에 대한 협정'을 체결해 관계개선에 나선 점을 언급하며 "EU는 계속해서 쿠바와 굳건한 관계로 나아갈 것"이라며 관계개선을 기대했다.
프랑스 엘리제궁도 성명을 내고 "카스트로가 20세기 주요 인물이었다"며 애도의 뜻을 나타낸 뒤 "그는 혁명이 불러일으킨 희망과 뒤따른 환멸 등 쿠바 혁명을 구현한 인물이었다"고 평가했다. 엘리제궁은 "인권 침해를 비판해 온 프랑스는 미국의 쿠바 금수 조처도 반대했다"면서 쿠바에 대한 금수조치 해제를 주장하며 쿠바와의 관계개선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쿠바 혁명 이후 프랑스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지난해 5월 쿠바를 방문했다.
파올로 젠틸로니 이탈리아 외무장관은 "20세기의 극적이고, 위대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닫혔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탈리아 정부는 카스트로 장례식에 대표단을 파견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반해 카스트로의 박해를 피해 유럽으로 망명한 쿠바 반체제인사들의 친척들은 카스트로의 타계에 대해 '애도'보다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쿠바 반체제인사인 오스왈도 파야의 동생 사클로스 파야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카스트로는 폭정을 시작할 때부터 이미 세계를 일촉즉발 전쟁의 위기로 몰아넣었다"면서 "카스트로이즘에 희생당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우리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쿠바의 우방이었던 러시아는 깊은 애도를 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날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에게 조전을 보내 애도를 표한 뒤 "이 위대한 국가 지도자의 이름은 진실로 현대 세계사에서 한 시대의 상징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와 그의 동지들에 의해 건설된 자유롭고 독립적인 쿠바는 국제사회의 영향력 있는 일원이 됐고 많은 나라에 영감을 주는 본보기 역할을 했다"며 카스트로를 "러시아의 진실하고 믿을 수 있는 친구"라고 강조했다.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동서 냉전 해체의 주역인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도 "카스트로는 20세기에 식민지 체제를 파괴하고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칭송했다. 겐나디 쥬가노프 러시아 공산당 당수는 "카스트로는 도덕 정치의 기반을 놓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운명과 노동자들의 가치 있는 삶, 행복한 세계에 대해 고민한 통치자이자 모든 인류의 모범"이라고 애도했다.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자신의 트위터에 "위대한 친구(a great friend)를 잃었다"며 "카스트로 전 의장의 타계에 쿠바 정부와 국민에게 깊은 애도를 전한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글을 올렸다. 모디 총리는 이어 "카스트로 전 의장은 20세기의 가장 상징적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인도는 위대한 친구를 잃었음을 슬퍼한다"며 "이 슬픈 시기를 쿠바 정부와 국민의 편에서 함께 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인도는 쿠바 공산 혁명 이듬해인 1960년 쿠바 수도 아바나에 대사관을 개설해 카스트로 정부를 승인했으며 쿠바는 자와할랄 네루 인도 총리 등이 창안한 비동맹운동에 초기부터 함께했다.
이란도 카스트로의 업적을 평가하며 타개를 애도했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외무장관은 "카스트로는 강대국의 식민주의에 맞서 싸운 독보적 인물"이라며 "쿠바 정부와 국민에 추모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다. 카스트로는 지난 2001년 이란을 방문해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 등 이란 고위 인사와 만났다.
제이컵 주마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카스트로가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인종격리정책)에 맞선 투쟁을 지원한 점을 상기시키면서 “쿠바 국민들은 카스트로 의장의 지도 아래 우리와 함께 싸웠다”고 강조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세계 혁명가들이여, 우리는 독립과 사회주의 그리고 고국을 위한 그의 유산과 깃발을 이어가야 한다”고 선동적인 발언을 했다. 카스트로와 고인이 된 휴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아주 가까운 정치적 동지였다.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도 트위터를 통해 “그는 위대한 인물이었다. 피델은 타계했지만 쿠바는 영원하라! 라틴 아메리카는 영원하라!”고 외쳤고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도 트위터를 통해 “쿠바 혁명과 20세기의 상징적인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의 타계를 애도한다. 그는 존경과 대화와 결속으로 양국 관계를 증진시킨 멕시코의 친구”라면서 조의를 표했다.
이에 반해 칼 빌트 전 스웨덴 총리는 “피델 카스트로는 1959년 공산혁명으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전혀 모델이 될 수 없는 억압적인 공산 독재체제를 탄생시켰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