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제지(현 아트원제지) 경영권 분쟁에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도운 신한은행이 수백억원 대 배상책임을 지게 됐다.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신호제지 전 부회장 엄정욱(66) 씨가 신한은행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5일 밝혔다. 이번 판결로 신한은행은 엄 씨에게 150억 원을 지급해야 한다.
재판부는 "기업의 경영권 획득에 관한 분쟁이 발생해 한쪽 분쟁 당사자가 횡령과 같은 불법 수단을 동원해 경영권을 탈취하려는 상황에서 (신한은행은) 대상기업의 주거래은행으로서 공정하게 이해상충을 관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쪽 분쟁 당사자 일방의 편에 가담해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했다"고 밝혔다. 시중은행이 경영권 분쟁 중인 기업의 주식을 취득해 한쪽 편에 가담해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은행법에서 정한 은행의 고유업무나 부수업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경영권 프리미엄'도 손해배상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봤다. 경영권 프리미엄은 지배주주가 경영권을 행사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말한다. 1심은 신호제지 주식을 100% 보유했을 때의 경영권 프리미엄은 902억 원이라고 보고, 이 중에서 지분 27.2%를 보유한 엄 씨에게 245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반면 2심은 엄 씨가 실제로 경영권 행사한 기간을 6개월 정도인 점, 투자금 일부를 반환받은 점 등을 감안해 배상액수를 150억 원으로 제한했다. 재판부는 2심 판단이 옳다고 판단했다.
엄 씨는 2003년 말 워크아웃을 졸업하기 위해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인 아람파이낸셜서비스를 통해 조합을 만들어 신호제지를 인수하기로 했다. 아람조합은 신호제지의 협력업체 34개와 아람파이낸셜로 이뤄진 기업구조조정회사였다. 하지만 아람파이낸셜이 적대적 세력인 국일제지에 동조하기 시작했고, 주채권은행인 신한은행조차 국일제지 요청으로 신호제지 주식 280만 주를 매입하면서 경영권은 국일제지로 넘어갔다. 이로 인해 경영권을 잃은 엄 씨는 "신한은행도 적대적 M&A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2009년 8월 소송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