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1571.12.27~1630.11.15)는 17세기 과학혁명을 주도한 사람이다. 칼 세이건은 “최후의 점성술사이자 최초의 천체물리학자”라는 말로 케플러의 위대함을 높이 평가했다.
케플러는 칠삭둥이 미숙아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용병으로 80년 전쟁에 참전해 네덜란드에서 전사했다. 어려서 천연두를 앓는 바람에 손가락이 불구가 됐고 근시와 복시까지 겹쳤다. 이런 역경 속에서도 연구를 계속해 현대 천문학의 기틀을 다졌다.
6세 때인 1577년 대혜성을 목격한 것이 케플러의 인생을 결정지었다. 뛰어난 학업 실력으로 튀빙겐대 신학부에 입학했으나 신학 대신 천문학 공부에 열중했다.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가 주창한 지동설을 최초로 지지한 저서인 ‘우주구조의 신비’를 발간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대 최고 천문학자였던 튀코 브라헤 밑에서 1년 정도 함께 일했으나 두 사람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케플러는 신성로마제국으로 돌아가 루돌프 2세 밑에서 황실 수학자로 일하면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가장 큰 성과는 오늘날에도 회자되는 ‘케플러의 법칙’이다. ‘행성은 태양을 타원 궤도로 돈다’ 등 세 가지로 구성된 이 법칙은 행성의 운동을 간단한 과학적 공식으로 표현해, 천문학이 점성술에서 비로소 독립할 수 있게 했다.
케플러는 접안렌즈를 볼록렌즈로 한 굴절망원경 원리도 세계 최초로 고안해냈다. 수학적으로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대수학을 천문 연구에 최초로 이용했으며 400년 동안 증명되지 못한 ‘케플러의 추측’이라는 가설도 제시했다. 또 세계 최초 SF소설이라는 평가를 받는 ‘꿈’도 펴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2009년 천문학에 대한 케플러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에서 우주망원경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