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8일. 약 2년에 걸친 미국 대선 레이스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번 대선은 이전과는 달리 민주·공화 양당 모두 경선 과정에서부터 막판까지 긴장감 넘치는 레이스가 이어졌다. 특히 양당의 최종 대선 후보에 대한 대중들의 반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미국 유권자들 사이에서 ‘최선’의 후보를 뽑는 것이 아니라 최악을 피하기 위해 투표해야 한다는 자조 섞인 말도 나오고 있다.
◇시작은 미미했으나…아웃사이더 돌풍=트럼프는 지난해 6월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가 출마를 선언했을 당시만 해도 그가 본선 무대에 오를 것으로 점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정치 경력이 전혀 없는 데다 대중에는 리얼리티쇼 ‘어프렌티스’에 나오는 괴짜 경영인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 하지만 아웃사이더였던 트럼프의 돌풍은 초반부터 거셌다. 트럼프는 가장 강한 경쟁자 1명을 겨냥해 막말 폭격을 가하는 방식으로 17명의 공화당 후보를 차례로 제압해 나갔다. 예를 들면 경선 후보 TV토론에서 자신의 성기 크기까지 거론, 경쟁후보인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을 ‘꼬마 루비오’라고 조롱했고 그를 가볍게 제압했다. 테드 크루즈 후보에는 불륜설을 꺼내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만들어 기세를 꺾었다. 예상치 못한 트럼프의 선전에 그의 유세장에서는 지지자와 반대파가 무력 충돌하는 사태가 여러 차례 발생하기도 했다. 모델 출신이었던 트럼프의 아내 멜라니아 트럼프의 누드 화보가 경선 이슈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지지층은 흔들리지 않았고 그는 무난히 공화당 최종 대선 후보에 올랐다.
민주당에서도 아웃사이더 돌풍이 거셌다. 클린턴이 지난해 4월 출사표를 던질 때만 해도 워싱턴 정가에서는 그가 무난하게 최종 대선 후보에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74세의 노장 버니 샌더스의 역풍에 클린턴은 초반부터 고전을 면치 못했다. 대선 풍향계로 불리는 2월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0.2%포인트로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승리했고 뒤이어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는 샌더스에 승리를 내줬다. 일각에서는 ‘검은 돌풍’을 일으킨 정치 신예 버락 오바마에 승리를 내준 ‘2008년의 악몽’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클린턴은 10여 개 지역에서 동시에 경선이 진행되는 ‘슈퍼 화요일’ 이후 기세를 잡기는 했으나 샌더스가 경선 완주를 고집하면서 민주당 세력을 결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트럼프의 인기 비결은 ‘막말’= 트럼프의 인기비결은 아이러니하게도 ‘막말’에 있다. “멕시코 이민자는 강간범이며 이들의 유입을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폭스뉴스 여성 앵커 매긴 켈리를 ‘빔보(bimbo:섹시한 외모에 머리 빈 여자를 폄하하는 비속어)’라고 표현하는 등 성차별적 발언도 일삼았다. 그때마다 자질론이 불거지기도 했지만 그의 지지율 상승세는 이어졌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지지자 중 52%가 ‘분노한 유권자’들이라고 진단했다. 이민자에 관대한 정책, 월가 대형 은행의 횡포와 소득 불평등에 분노하고, 무능한 워싱턴 정치에 실망한 백인 중산층 유권자들이 트럼프 막말에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 것이다. 물론 트럼프의 막말이 발목을 잡는 사건도 있었다. 7월 말 대선 후보로 공식 선출되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트럼프는 클린턴의 민주당 전대에 등장한 무슬림계 이라크전 전사자 부모를 비하하는 발언으로 역풍을 맞았다. 이후 트럼프와 클린턴의 지지율 격차는 두 자릿수로 벌어졌다.
◇‘스캔들’로 얼룩진 2016 대선…진흙탕 싸움의 끝은?=클린턴이 우세한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의 최대 약점으로 꼽히는 ‘이메일 스캔들’ 관련 연방수사국(FBI) 수사 결과가 7월 공개됐고, 그의 가족이 운영하는 클린턴재단을 둘러싼 부패의혹도 불거졌다. ‘9·11 테러’ 15주기 추모행사에서는 참석 도중 갑자기 어지럼 증세로 휘청거린 뒤 자리를 급하게 뜨면서 건강이상설도 퍼졌다. 클린턴을 둘러싼 의혹들이 증폭되면서 두 후보의 지지율 격차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트럼프의 음담패설 녹음파일이 폭로됐고 트럼프가 사과 대신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상승곡선을 타던 그의 지지율도 꺾였다. 이에 2차 TV토론 직후 클린턴과 트럼프의 지지율 격차는 다시 10%대로 벌어졌다. 하지만 연방수사국(FBI)이 지난달 28일 클린턴의 이메일 스캔들 재수사 방침을 밝히면서 대선판은 다시 요동치고 있다. 대선이 두 후보의 각종 스캔들로 얼룩지면서 누가 당선돼도 한동안 자질 논란 등 후유증이 심각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