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운 적이 언제예요?” 면접관의 마지막 질문에 20대 여성 구직자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긴장한 탓도 있었지만, 약 50분간 이뤄진 면접관과의 대화가 구직자의 감정을 움직였다. …
“면접관들이 따듯하게 이야기를 해주니 배려받는다는 느낌이 들었고, 내 이야기를 깊게 하다 보니 감정적으로 이입이 됐어요.”
이 여성 구직자는 면접 당시 느꼈던 따듯한 감정을 아직까지도 잊지 못했다. 수십 번 면접에 떨어지며 상처가 났던 마음이 한순간이지만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국내 건축분야 소프트웨어(SW) 중소기업인 마이다스아이티의 면접 현장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연매출 1000억 원 규모의 마이다스아이티는 국내 중소기업으로서는 드물게 청년 구직자들이 몰리는 몇 안 되는 회사다. 이 회사의 지난해 하반기 공개채용 경쟁률은 1000대 1. 1만2470명이 지원해 12명이 채용됐다. 대기업도 아닌 중소기업에 청년 구직자들이 이같이 몰려드는 비결이 뭘까.
◇1000대 1 경쟁률… 사람에 대한 배려가 만든 숫자=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마이다스아이티는 대졸 초임이 4000만 원 이상으로 연봉 측면에서도 동종업계에서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5성급 호텔에서나 먹을 법한 뷔페 점심, 5년에 한 번씩 리프레시 휴가 제공 등 직원 복지도 잘 돼 있는 회사다. 우수 사원에게는 한 달간 스포츠카도 빌려준다. 하지만 이 회사에 취업한 청년들은 마이다스아이티를 설명할 때 풍부한 복지제도보다 ‘사람에 대한 배려가 깊은 회사’라는 것을 먼저 말한다.
올해 신입으로 입사한 최정원(24)씨는 “지원 과정에서부터 사람을 중시하는 회사라는 것이 느껴졌고, 자기소개서 질문 항목, 면접 시 질문 내용들에서도 구직자가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며 “경력, 스펙 등을 물어보지도 않고 내가 삶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등을 물어봐 자존감을 살려줬다”고 말했다.
마이다스아이티는 매년 상ㆍ하반기에 한 번씩 채용설명회를 연다. 단순히 회사 홍보를 하는 것이 아닌, 최고경영자(CEO)의 강연 형식으로 진행된다. 대기업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마이다스아이티의 CEO가 되기까지의 개인적인 삶을 이야기하면서, 취업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현재를 최선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청년들을 응원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회사는 탈락한 구직자들에게도 각자 다른 내용으로 장문의 위로 메일을 보낸다.
마이다스아이티 김보라 인사담당자는 “CEO의 강연으로 회사에 대한 이해도를 직접적으로 높일 수 있고, 청년들의 고민을 아우를 수 있는 내용도 곁들여져 청년 구직자들의 호응이 높다”면서 “탈락한 구직자들이 면접 과정에서 많이 배웠다면서 보낸 메일만 최근 30건가량 된다”고 말했다.
◇찾아가는 면접?… 톡톡 튀는 스타트업 채용= “면접을 여러 번 해봤지만 찾아오는 면접은 처음 접해 봤어요. 상대방을 배려하는 느낌이 드는데, 기분은 참 좋더라고요.” 지난달 경력직으로 위드이노베이션에 입사한 성제현 기획팀 차장(37)은 과거 면접 당시를 이렇게 평했다. 위드이노베이션은 숙박 온ㆍ오프라인 연계(O2O)서비스 ‘여기어때’를 운영하는 스타트업이다.
성 차장은 나이는 30대 중반이지만, 업무 경력은 5년 남짓한 청년 인력이다. 그는 1차 기술면접을 본 후 2차 인성면접을 ‘찾아가는 면접’으로 진행했다. 위드이노베이션의 찾아가는 면접은 면접관이 구직자가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방문해 면접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위드이노베이션 심명섭 대표는 “찾아가는 면접은 부담 없는 분위기에서 편안한 대화를 통해 지원자의 진면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며 “일방적으로 지원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 아니라 상호 소통으로 이뤄져 회사에 대한 정보를 지원자에게 올바로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성 차장은 입사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첫날 자신의 책상 위에 붙어 있던 환영 메시지를 간직하고 있다.
“새로 들어온 사람을 위해 책상 이름표에 환영 메시지를 붙여놓더군요. 작은 메시지이지만 따뜻한 느낌이 들어 아직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작은 환영 메시지 하나는 그에게 큰 기억으로 남았다. 위드이노베이션은 찾아가는 면접을 포함한 다양한 방식으로 올 들어 청년 인력 100여 명을 채용했다.
◇제조 중소기업들도 청년 채용 노력… 하지만 높은 장애물 여전= 구인ㆍ구직 사이트 잡코리아에 따르면 올해 취업준비생 10명 중 8명은 올해 중소기업이라도 취업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소기업 선호 이유로는 ‘직무가 맞으면 기업 규모는 상관없다’라는 응답이 29.7%로 가장 많았다. 채용 한파가 불어닥치면서 굳이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에서 능력을 개발하려는 청년 구직자들의 수요가 조금씩이지만 늘고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부여된 업무 중에서도 다양성과 중요성을 찾아 본인의 능력을 개발하고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곳이 중소기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기업은 전체적 업무능력의 통합적인 습득이 어려운 한계가 있어 눈높이를 바꿨어요.” 올해 철강재 유통ㆍ가공 중소기업 신화철강에 입사한 김기범(가명) 씨의 말이다.
김 씨가 입사한 신화철강은 올해 청년 인력 8명을 채용했다. 여성 CEO인 정현숙 대표는 사옥 내 북카페 설치, 체력단련비, 부부동반 해외연수 등 지방 중소기업치고 풍부한 복지제도를 마련했다. 경상남도 창원 지역 내에서 비교적 인지도가 높아 다른 지방 중소기업들에 비해 활발하게 청년 채용이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채용 시 회사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을 공개해 청년 구직자들이 회사를 직접 판단하게 하는 개방형 채용방식을 택한 것도 한 이유다.
하지만 여전히 중소기업들의 한계는 있다. 충청남도 보은에 위치한 플라스틱 사출성형기 제조업체 우진플라임은 올해 6월까지 130여 명의 청년 인력을 채용했다. 많은 규모의 채용이지만 허수가 있다. 중도 퇴사하는 인원들이 많아 결원 충원의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역시 지리적 핸디캡이 컸다.
우진플라임 인사담당자 장정운 차장은 “주말에 인천으로 왕복하는 셔틀버스, 기숙사를 짓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청년 인력들은 지방에서 적응을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직률을 낮추기 위해 복리후생을 높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에 대한 청년들의 인식 개선도 시급하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주관하는 ‘이공계 기술전문연수 프로그램’으로 구직 중인 서현규(26) 씨는 “중소기업이라고 하면 좋지 않은 복지에 야간수당도 없고,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 이미지가 크다”며 “취업 준비하면서 우수 중소기업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아직까지는 대기업을 따라가기에는 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함께 구직 중인 노란새(26)씨도 “연봉과 복지를 늘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중소기업들이 많은 만큼, 기업 정보를 좀 더 널리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