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과 함께 금융감독당국의 금융회사 검사 현장도 달라지고 있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금융감독원 검사역들은 하나은행에 검사를 나가면서 김영란법에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자신했다가 적지 않게 당황하는 일이 생겼다.
예상보다 김영란법의 해석이 엄격해진다는 판단에 따라 마실 물과 검사 도중 쉬면서 먹을 간단한 간식 등을 준비해 구설에 오를 수 있는 여지를 원천 차단하려고 했다. 평소 같았으면 커피믹스와 냉온수기 정도는 피검기관인 은행에서 제공한다.
그러나 뜻하지 않는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하나은행 측에서 금감원 직원에게 주차비를 요구한 것이다. 하나은행은 금감원 검사역들에게 “다음 날부터는 주차요금을 내야 하니 이를 숙지하고 착오 없길 바란다”는 입장을 전했다.
금감원은 보통 2~3주간 걸리는 현장 검사 첫날 컴퓨터와 각종 사무용품 등 비품을 챙기기 위해 차량을 쓰는 일이 있다. 이 차량에 대한 주차비가 문제가 됐다.
특히 현장 총책임인 검사반장에겐 차량이 제공되는 경우가 있고, 집이 먼 직원은 자차를 이용해 출퇴근한다.
금감원도 감사원 감사 기간 동안 관련 임원에게 주차증을 발급하는 경우가 관례였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더라도 금감원 주차장은 주차비를 받지 않기 때문에 문제의 소지가 적다.
그러나 은행은 영리목적의 법인으로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주차비를 받고 있다. 이번에도 가급적 엄격하게 김영란법을 적용해 금감원 직원들의 차량에 주차비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직원들은 일견 이해가 가면서도 뒤바뀐 환경이 다소 어색하다고 반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정부가 예산을 정하고 금융업권 각 협회에서 운영비를 분담하는 무자본 특수법인이다. 금융의 공공성을 관리하기 위해 금융회사를 감독한다는 측면에서 직원들은 공직자와 같은 윤리성이 요구된다.
당연히 김영란법도 적용받는다. 이런 점에서 금감원은 직원들에게 수차례 관련 교육을 실시했다.
진웅섭 금감원장은 김영란법 시행 후 관련법의 유권해석이 미뤄지고 있는 만큼, 한 달간 외부인과의 점심 약속을 갖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 직원들도 친구들과의 식사자리를 갖는 데 불편함을 겪고 있다. 금감원 직원들은 국내 최고 대학 출신이 80% 정도다.
금융권도 우수한 인재들이 몰리는 업권이라 금감원 직원들이 대학 학부생 시절부터 알고 있던 이들이 많다.
김영란법대로라면 이들과의 식사자리도 매번 각자가 비용부담을 해야 한다. 돌아가면서 사는 한국식 문화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김영란법의 유권해석 사례가 없어 모두 조심하는 분위기”라며 “그러나 금감원의 업무적 방문까지 주차비를 요구하는 것은 다소 과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