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영화판, 세상판] 여름 감독들을 위한 약간의 변명

입력 2016-09-13 10:07 수정 2016-09-13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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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간다. 여름 극장가도 서서히 정리돼 간다. ‘아가씨’로 시작된 올여름 극장가는 ‘부산행’이 기어이 천만 관객을 넘기더니 ‘인천상륙작전’과 ‘덕혜옹주’가 더위 못지않은 흥행 ‘기승’을 부렸고, 영화 엔딩을 두고 불만이 쏟아지긴 했지만 ‘터널’ 역시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 이어 지금은 ‘밀정’이 늦여름의 후텁지근한 더위처럼 극장가를 달구고 있다. 세상사가 늘 그렇지만 극장가 역시 누구는 웃고 누구는 울게 만든다. 떠들썩한 흥행의 와중에 ‘국가대표2’와 ‘고산자-대동여지도’의 실패는 그 어느 해 여름보다 더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다.

‘고산자’와 강우석의 퇴락이 뼈아프고 서글프다. 한때 영화계 패자(覇者)였던 그 역시 이제 많은 것들을 내려놓을 때가 된 셈이다. 연출력이 심각하게 퇴조한 탓이었을까. 강우석 같은 인물은 DC인사이드 같은 팬덤 카페, 혹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고 주장하는) 영화 정보를 제공하는 왓챠 같은 애플리케이션을 전혀 이용할 줄 몰라서일 수도 있겠다. 하루하루 눈썹이 날리도록 변하는 세상에 대해 무감각해서일 것이다. 영화감독 중에는 여전히 카카오톡도 안 하고 사는 사람이 많다. 이들의 고집스러운 복고주의가 꼭 잘못된 것일까. ‘고산자’를 낡은 것으로만 치부하는 세태 분위기에 선뜻 손을 들어주기 힘든 심정이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올여름 흥행 시즌만큼 논쟁적이었던 때도 드물다. 이 역시 두고두고 기억될 공산이 크다. 논란은 ‘역사’를 둘러싸고 벌어졌다. 영화의 내용이 역사적 팩트에 충실한 것이냐, 윤색을 넘어 역사 왜곡의 수준에까지 이르게 한 것은 아니냐 등등 거친 말들이 오갔다. 공격적인 화자들은 영화감독들 중 일부가 도무지 역사관이 없다고 질타했다. 아마도 ‘인천상륙작전’이나 ‘덕혜옹주’에 몰린 얘기들일 것이다.

‘인천상륙작전’이야 태생적으로 논쟁을 유발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좌우 이념 대립이 특히 6·25 전쟁의 시발과 기원을 두고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맥아더 동상을 두고 철거를 해야 한다는 둥, 그러면 안 된다는 둥 얼마나 갈등이 심했던가를 기억하면 이 영화가 어느 쪽에 발을 두고 있는지를 처음부터 가늠케 했다. ‘인천상륙작전’이 일부에서 ‘국뽕영화(히로뽕에 취한 듯 국가주의에 취한 영화를 뜻하는 속어)’라고 불렸던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가 극우 파시즘에만 기반한 영화였을까. 몇몇 낯간지러운 장면을 빼고는 오히려 이념적 톤앤매너를 지키려는 안간힘이 엿보일 정도였다고 하면 작품을 편드는 게 될까. 반면에 그레고리 펙, 데이빗 니븐 주연의 1961년작 ‘나바론 요새’를 흉내낸 작품일 뿐이라고 하면 이번엔 감독과 제작자가 난리를 치는 건 아닐까.

‘덕혜옹주’가 역사를 왜곡했다는 비판 역시 다소 매몰차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영화를 본 500만 가까운 관객이 오히려 구한말, 일제 강점기의 역사에 대해 되돌아볼 계기가 됐다고 조금 여유로운 시선을 열어주는 것도 필요한 것은 아닐까. 허진호 감독이 역사의식이 없다거나 역사관이 비뚤어졌다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자본’이 없었을 뿐이다. 올여름 만난 흥행작 감독의 대부분, ‘아가씨’의 박찬욱과 ‘터널’의 김성훈, 심지어 ‘부산행’의 연상호에게까지도 해당되는 얘기일 수 있겠다.

올여름 한국 영화의 경향은 한마디로 웰메이드 영화의 굴레에 스스로 안착해 막대한 상업적 수익의 창출에 합의해 줄 수밖에 없음으로 해서 자신의 고유한 작가적 정체성을 유기(遺棄)한 감독들의 작품이 양산된 한 해였다고 기록될 것이다. 40대 후반~50대 중반 감독들의 불안한 실존이 하늘 아래 범작을 가득하게 만들었으며 자본주의적 불안이 예술적 영혼을 잠식하고 있음을 실증해낸 여름이었다. 따라서 몇몇 작품을 두고 벌어진 역사 논쟁은 한국 영화가 지나치게 대작 상업화되는 경향과 그 아우라 안에서 비판의 논거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늘 그렇지만 자본은 역사를 입맛에 맞게 바꾸려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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