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있다. 20대 국회에 입성한 초선 의원은 132명으로, 전체 300명 의원의 절반 가까이(44%)를 차지한다. 초선의원은 열정과 의욕은 앞서지만 어떠한 자료를 어떻게 요구해야 할지 몰라 방대한 자료를 요구하기 일쑤다. 그러면서 왜 많은 자료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설명조차 없다.
또 수백 쪽에 달하는 해외 자료를 번역해 달라거나 홈페이지에 게재돼 있는 보도자료를 굳이 일일이 정리해 달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새로 상임위원회에 배정된 의원이나 보좌진도 기본적인 피감기관 업무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무리하게 자료를 요구하기는 마찬가지다.
국회 상임위를 담당하는 한 정부 부처 관계자는 “구두 질의에 앞서 장관 결재 사항이나 연구용역 내역 등의 자료를 잔뜩 제출토록 하는 것은 기본, 질의 내용조차 미리 주지 않고 새벽에 짤막하게 툭 던져 놓고 밤새 일하게 만드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부처 공무원은 “얼마 전 한 의원 보좌관이 7년치 자료를 이틀 내 보내 달라고 해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고 하소연했다.
국감이 시작돼도 의원들의 갑질은 그치지 않는다. 19대 국감에서도 정책 비판은 없고 피감기관에 호통만 치다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정치적 쟁점이나 증인 채택, 자료 제출 부실 등을 이유로 국감이 파행되는 경우도 물론 많았다. 1년에 단 한 번, 국정감사 기간 세간의 이목을 끌고자 하는 의원의 ‘한탕주의’는 이 같은 행태를 더욱 부추긴다.
국감 시즌이 아닌 평소 정기국회 기간에도 국회의원들의 ‘갑질’은 일상화돼 있다. 의원 보좌진에게 법안이나 예산안에 대해 설명하라고 해놓고선 나중에 정작 의원 본인은 설명을 제대로 들은 바 없다고 우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의원 직접 보고에는 소위 ‘격’이 맞아야 한다며 담당 사무관이나 서기관이 아닌 과장이나 국장급 이상을 굳이 불러들이는 ‘갑질’까지 서슴지 않는다.
상임위 회의 때문에 세종시와 서울을 KTX로 오가는 것은 일상이다. 회의가 갑자기 무산되기라도 하면 수백 명의 공무원들이 헛걸음을 치는 셈이다.
최근 총리실은 이같은 여론을 반영, 정부와 국회간 원활한 공조관계를 만들고 협조를 강화하기 위해 대(對)국회업무 관련 부처에 대한 의견 수렴에 나섰다고 한다. 단순히 의견을 듣고 피해 현황 파악에 그쳐서는 안된다. 30년 가까이 된 국감 제도와 관행을 이번 기회에 뜯어 고치는 시발점이 돼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피감기관 위에 군림하려는 국회의원들의 ‘슈퍼 울트라 갑’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오랜 관행이 사라지기 어렵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