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 사무실에서 알리시아 비칸더를 인터뷰했다. 스웨덴 여성으로선 남달리 피부가 가무잡잡한 비칸더는 머리카락이 어깨 아래까지 내려오는 귀여운 소녀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질문에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며 악센트가 있는 말투로 차분하게 대답했다. 사적인 물음에는 얼굴에 홍조를 띠며 부끄러워하면서도 활기 있고 명랑한 어조로 꾸밈없이 응했다.
비칸더는 얼마 전 ‘제이슨 본’ 홍보차 맷 데이먼과 함께 서울에 다녀왔는데 인터뷰 후 필자와 기념사진을 찍을 때 “서울에서 먹은 비빔밥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며 활짝 웃었다. 그런데 비칸더는 ‘대양 사이의 불빛’을 찍다가 패스벤더(39)와 사랑에 빠졌다. 비칸더는 올해 ‘덴마크 여인’으로 아카데미 조연상을 받은 바 있다.
△이 영화에 나오기로 결정한 이유는.
“감독 데렉 시안프란스와 일하고 싶어서다. 나는 데렉의 ‘블루 발렌타인’과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를 극장에서 두 번이나 봤는데 보기에 쉬운 것들이 아니다. 내 역도 하기 힘든 것으로 이런 도전적이라는 점도 출연에 응한 또 다른 이유다. 그리고 뛰어난 연기자인 패스벤더와 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데렉은 어떤 감독인가.
“그는 매우 구식이지만 철두철미한 감독이다.”
△영화에서 톰은 행복한 사람이 아닌데 이사벨은 그런 남자에게서 무엇을 찾을 수 있다고 보는가.
“그가 침울한 것은 전쟁 후유증 탓이다. 역시 전쟁에서 가족을 잃은 이사벨은 전쟁에서 돌아온 톰을 영웅으로 보면서 그를 통해 전쟁에 나갔다 돌아오지 않는 자기 가족의 전장에서의 삶을 관찰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사벨은 엄격하고 빈말을 하지 않는 톰에게 깊은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둘이 사랑을 하게 되면서 톰이 걸어 잠근 마음의 문이 열리게 된다.”
△톰 같은 남자를 좋아하는가.
“믿을 수 있고 친절하며 무엇이든 내가 하는 일을 지지하는 남자라면 가까이하고 싶다.”
△외딴 섬에서의 촬영 경험이 어땠는가.
“우린 가장 가까운 작은 마을에 가려면 차로 3시간이나 걸리는 섬에서 촬영했다. 내 생전 이렇게 자연 속에서 살아본 적도 없다. 문명과 완전히 절연된 고독한 장소로 어떤 등대지기가 미쳐서 나갔다는 말도 들었다. 고독과 함께 밤이면 등대의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사람을 미치게 할 만하다. 기상도 변덕이 심해 매일의 해돋이와 석양의 모습이 달랐고 폭풍우도 여러 차례 경험했다.”
△마이클과 일한 경험은 어땠는가.
“우린 과거 영화제에서 만난 적은 있으나 진짜로 대화를 나눈 것은 웰링턴에서 열린 이 영화의 리허설 때였다. 그리고 난 처음부터 그와의 콤비가 잘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 영화는 감정적이고 매우 심오한 작품이어서 두 사람 사이의 찰떡 호흡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는 내가 본 그 어떤 배우보다 더 용감한 연기자다. 그런데 그가 매우 치열한 배우여서 처음에는 다소 겁이 났다.”
△이사벨처럼 어머니가 되고 싶은 생각이 있는가.
“어렸을 때 부모가 이혼해 난 어머니와 함께 오래 살았다. 우린 매우 가까웠는데 그래서인지 난 10대 때부터 가정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난 아직 어린 나이라고 하겠는데 벌써 어머니 역을 여섯 번이나 했다. 이 영화에서 아기를 임신하고 또 유산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려고 세트에서 일하는 여러 어머니들에게 자문했다.”
△톰과 이사벨은 사랑에 빠지면서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데 당신도 사랑을 하면서 같은 경험을 했는가.
“모르겠다. 모든 사람의 안에는 다 사랑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랑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난 커서 사랑하는 사람들로 둘러싸여 살았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난 지금 다른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다. 사랑을 앎으로써 우리는 남을 존경하게 되며 또 내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난 내가 이렇게 배운 것을 남에게 돌려주고 싶다.”
△사랑이 어떻게 어려운 지경에서도 톰과 이사벨을 연결해 주었다고 보는가.
“처음에 만났을 때 그들은 서로가 달라 충돌했다. 그래서 둘은 아마도 서로가 연결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둘은 같은 정열을 지녔고 삶과 인간성과 사랑의 본질을 추구하고자 하는 강한 동기가 있어 결합된 것이다. 따라서 둘의 사랑은 뜬구름 같은 것이 아닌 진짜 지적이며 어른다운 사랑이다.”
△마이클과 다시 공연할 계획이라도 있는가.
“좋은 감독과 각본이 있다면 다시 함께 일하고 싶지만 현재로선 아무 계획도 없다.”
△패션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LA에서 활동하면서 자연히 그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스트레스가 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재미라고 생각하려 한다. 난 옷을 만드는 사람들을 훌륭한 예술가라고 여긴다. 그런데 내 스타일리스트는 나와 가장 친한 친구다. 하지만 보통 때는 그저 편하고 느슨한 옷을 즐긴다.”
△유산하는 장면을 찍기가 힘들었는가.
“그 장면은 영화 내용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어서 찍기 전에 정말로 안절부절못했다. 그리고 데렉은 촬영을 간단히 끝내는 감독이 아니어서 그 장면을 찍는 데 무려 45분이 걸렸고, 그런 장면을 대여섯 번 반복해야 했다. 한 번 찍고 나면 완전히 졸도할 지경이 되곤 했다.”
△배우들은 자주 옮겨 다니면서 사는데 어디서 사는가.
“5년 전부터 런던에서 살고 있다. 난 나를 유러피언으로 생각한다.”
△삶에서 매우 아끼고 긍정적이며 또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경험은 어떤 것인가.
“삶 전체가 바로 그런 것 아니겠는가. 내가 잃고 이루지 못해 슬퍼하는 일들도 많지만 시간이 지나고 또 그것들과 거리를 두게 되면 과거를 통찰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 새로운 길을 걸으면서 자신이 바라는 것도 이룰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런던에서 살고 LA에서 활동하면서 어느 나라 말로 생각하고 꿈을 꾸는가.
“스웨덴 말인데 영어를 주로 쓰다 보니 모국어마저 서툴러지는 것 같다. 그러니 어느 한 나라 말도 제대로 못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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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양 사이의 불빛’(The Light Between Oceans)
운명과 사랑과 도덕적 딜레마에 관한 가슴 아픈 드라마로 M.L.스테드맨의 소설이 원작. 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톰은 호주 서부 연안 외딴 섬의 등대지기를 자원해 간다. 그는 섬에서 혼자 살면서 삶의 단조로움과 고독에서 위안을 찾는다. 톰은 이웃 마을에 갔다가 그 마을 학교 교장의 아름답고 위트 있고 또 정열적인 딸 이사벨을 만나는 순간 그녀에게 매료된다. 그리고 둘은 결혼해 섬에서 살면서 사랑을 불태우고 이로 인해 톰의 굳게 닫혔던 내면도 열린다.
문제는 이사벨이 두 번의 유산으로 아기를 가질 수 없다는 것. 그런데 어느 날 톰이 표류해온 보트에서 죽은 남자와 갓난 여아를 찾아 아기를 안고 오면서 이사벨은 톰의 주저에도 불구하고 이 아기를 자기가 키우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몇 년 후 톰이 여아의 친모를 목격하면서 비극이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