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국남의 직격탄] 구봉서와 코미디언의 굴레

입력 2016-09-01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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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평론가

그들은 우리를 웃기기 위해 기꺼이 바보가 되고 백치가 된다. 눈물 나도록 웃게 하려고 엉덩이를 차이고 몽둥이로 얻어맞고 케이크를 뒤집어쓴다. 그들의 이름은 코미디언. 그래서일까. 프랑스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은 “코미디언은 사람들을 정화하기 위해 고통의 짐을 지는 영웅”이라고 했다.

삶이 고달픈 서민과 현실이 팍팍한 대중에게 웃음을 주고자 기꺼이 바보가 되고 고통의 짐마저 졌던 우리 시대 최고의 광대, 구봉서가 8월 27일 웃음의 무대를 지상에서 하늘로 옮겼다. 구봉서가 1945년 악극 무대에서 웃음을 선사하며 걷기 시작한 70여 년의 코미디언 길은 한국 코미디 역사 그 자체다. 악극 무대에서, 라디오에서, 영화에서, 그리고 TV에서 코미디를 개척하고 콩트, 슬랩스틱 코미디, 풍자 등 코미디 장르와 기법을 개발하며 오늘의 한국 코미디를 만들었다.

대중의 웃음 뒤에 가려진 구봉서의 70여 년 코미디언 삶은 가시밭길이었다. 한국 코미디와 코미디언에게 덧씌워진 불온한 굴레 때문이다. 이 땅의 코미디언은 대중에게 선사한 웃음의 의미와 가치조차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채 가혹한 비판과 편견을 먹고 살아왔다. 저질의 대명사는 늘 코미디의 몫이었고 방송의 금과옥조인 공익성의 반대편인 선정성과 폭력성은 코미디언의 등가물이었다.

코미디언은 재미있게 웃고 즐겼으면서도 저질 코미디는 보지 않았다고 말하는 대중의 이중성 박해 속에서도 웃음의 전령사로서 자리를 굳건하게 지켰다. “어디서 저질 코미디로 웃기려 하냐” “코미디언 주제에 사회를 비판해”…. 코미디언은 대중의 의식과 일상까지 지배한 지독한 편견과 언어폭력 속에서도 다양한 문양의 웃음꽃을 피웠다. 정부 당국의 터무니없는 규제와 징계로 소재와 내용에 극단적 제한을 받으면서도 날카로운 풍자와 해학으로 대중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줬다.

“1969년 유현목 감독의 영화 ‘수학여행’에 코미디언인 내가 주연했다고 문공부에서 B급 영화로 판정했어. 문공부에서 유 감독에게 국제영화제에 코미디언이 주연한 영화를 출품하려고 하냐고 말했다는 거야. 그런데 국제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았어. 코미디언이 주연했다는 이유만으로 저질 영화로 판단한 것에 분노가 치밀었지.” 구봉서의 언급은 오랫동안 한국 코미디와 코미디언에게 가해진 부당한 인식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래도 구봉서는 코미디에 웃어주는 대중이 있어 웃음 전령사 역할을 포기할 수 없었다고 했다. 다른 코미디언들도 마찬가지이리라. “코미디가 뭔 줄 알아? 코미디는 인생살이를 조명하면서 웃음을 끌어내는 연기야. 단순히 웃기는 게 아니라 메시지가 있는 거지.” 생전의 인터뷰에서 힘주어 이렇게 말하던 구봉서는 “배고프고 어려운 시절 수많은 국민에게 웃음을 줄 수 있었으니 난 참 행복한 사람이야. 코미디언이 내 운명인 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라며 웃었다. 천생 코미디언이었다. “코미디언 중에는 어려운 사람이 많으니 조의금 받지 마라”는 유언을 남긴 구봉서는 죽는 순간까지 코미디언이었다.

구봉서 같은 코미디언이 전해주는 웃음에는 의미가 있고 감동이 있고 눈물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생활의 시름과 현실의 고통을 잠시 잊고 환하게 웃는다. 코미디언이 표출한 바보와 백치를 보면서, 그리고 겁 많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목도하면서 한바탕 웃고 난 뒤 정신과 육체의 더러움을 정화한다.

코미디언, 그들이 사랑받는 것은 단지 우리를 웃기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사랑받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며 그들이 우리를 웃기기 때문은 아닐까. 더는 한국 코미디와 코미디언에 부당한 굴레를 씌우지 말자. 그것이 70여 년 우리의 웃음을 위해 고통의 짐을 지고 이제는 웃음의 무대를 하늘로 옮긴 구봉서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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