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배 칼럼] 국가마다 다른 눈사람

입력 2016-08-30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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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비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조금 선선해졌지만, 올여름은 기록에 남을 만큼 더웠다. 막바지 무더위도 남아 있을 테니 잠시 잊고 겨울에 눈사람을 만든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는 눈사람을 몸통과 머리를 한 덩어리로, 하체를 다른 덩어리로 뭉친 뒤 두 개가 연결된 형태로 만든다. 반면, 미국의 눈사람은 머리 한 덩어리, 몸통 한 덩어리, 하체 한 덩어리가 연결된 형태이다. 미국 사람들은 덩치가 커서 3개의 덩어리로 만드는 것인가 혼자 궁금해한 적이 있다.

그런데 영국에서 몸통과 머리가 한 덩어리인 우리와 같은 눈사람 형태를 봐서 반가운 적이 있었다. 영국 사람들도 덩치가 크니, 사회 구성원들의 신체 사이즈로 눈사람 형태가 결정되는 것 같지는 않다. 비단 눈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것들이 지역이나 국가에 따라 다르다.

다른 예로, 미국에서 파는 바인더는 구멍이 3개 뚫린 종이가 들어가게 되어 있고, 영국이나 한국에서 파는 바인더는 구멍이 2개 뚫린 것들이 많다. 또 대학원 진학이나 취업에 필요한 추천서도 영국이나 한국에서는 2개 이상이 필요하지 않은 반면, 미국은 통상 3개의 추천서를 요구한다. 물론 미국인이 항상 숫자 3을 좋아한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눈사람 형태, 바인더 모양, 필요한 추천서 개수 등은 한 사회의 문화ㆍ관습ㆍ제도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문화ㆍ관습ㆍ제도 등에 무엇이 포함되고 안 되는지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사회의 구성원들이 동의하고 무의식적으로 따르는,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많은 부분이 포함될 것이다.

선진국 중 미국을 가장 먼저 직접 경험한 필자는 한국과 미국의 제도가 다를 경우 미국 제도가 일반적이고 앞서 나가는 데 반해, 한국 제도는 특별하고 뒤처진 것이라고 잘못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미국에 거주한 이후 유럽 등 세계 각국을 방문하면서 깨달은 것은 단순하게 미국 제도가 항상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 제도는 많은 경우 미국이라는 특수한 사회에 국한된 제도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가장 선진국이라고 하는 미국에서 정착된 제도라도 반드시 다른 사회에 일반화할 필요는 없고, 새로운 사회에 도입하려면 고려할 사항이 많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최근 주소 표시를 도로 중심으로 바꾸고 우편번호를 5자리로 변경하면서, 미국의 주소 방식과 매우 유사하게 바꾸었다. 기존 주소만으로 찾기 힘들었던 문제가 많이 보완되고, 우편배달의 효율이 증대되는 등 다양한 편익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존 제도를 단기간에 바꾸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 비용 편익 분석이 그리 단순하지는 않을 것 같다. 변경된 제도가 정착하고 토착화한 이후에는 그 실익을 더 잘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눈사람을 머리ㆍ몸통ㆍ하체를 의미하는 3개의 덩어리로 만들지만(왼쪽), 한국에서는 2개 덩어리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런 눈사람 형태도 한 사회의 문화ㆍ관습ㆍ제도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눈사람을 머리ㆍ몸통ㆍ하체를 의미하는 3개의 덩어리로 만들지만(왼쪽), 한국에서는 2개 덩어리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런 눈사람 형태도 한 사회의 문화ㆍ관습ㆍ제도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럼, 이와 같은 사회제도가 어떻게 결정되고,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주소 표시 변경과 같은 행정적인 제도 변경의 결정 요인과 과정, 이에 따른 개인에 대한 영향을 분석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좀 더 거대 담론인 ‘시장경제나 민주주의와 같은 제도가 어떻게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가’는 경제학자들에게 물리학자들이 빅뱅의 원리를 이해하려고 연구하는 것과 유사한 야심찬 주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인과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사회·정치·경제제도가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개인들의 선호나 가치관에 따라 제도가 형성되는지 원인을 알기 어렵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논쟁과도 같다.

이와 관련해 필자가 참가한 최근 연구가 있다. 서울대 경제학부 김병연, 이정민, 최승주 교수와 한양대 최경희 박사가 공동저자(이하 서울대 연구팀)이며, 연구논문 제목은 ‘Do Institutions Affect Social Preferences? Evidence from Divided Korea’(Journal of Comparative Economics, forthcoming)이다. 제목이 시사하듯이 ‘제도가 사회적인 선호에 영향을 미치느냐’가 연구의 주제이다.

사회·정치·경제제도가 개인의 선호에 영향을 미쳤는지 연구하기 위해서는 제도가 사회 구성원들의 의지·선호·가치관과 무관하게 빅뱅처럼 시작된 경우가 필요하다. 서울대 연구팀 연구에서는 한반도의 분단이 이런 경우를 제공한다는 관점에서 시작한다. 남북 분단이 사전적으로 비교적 동일했던 한반도 구성원들을 시장경제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에 입각한 폐쇄 독재체제라는 두 개의 이질적 사회·정치·경제제도로 나눈 역사적인 사회실험(social experiment)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분단 전에는 단일민족으로 오랫동안 통일된 국가로 지속하다가,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나뉜 지 어느덧 70년이 되었다. 분단 후 북한에서는 공산주의와 독재체제가 형성되고, 남한에서는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발전하였다. 남한과 북한이 정치경제적으로 서로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지난 70년간 한반도 양쪽의 사람들도 바뀌었다. 또 전혀 다른 교육을 받고, 전혀 다른 경제활동과 사회적 경험을 하며 살아왔다. 분단 70년 동안 남과 북의 사람들은 얼마나 서로 다르게 변했을까?

남한과 북한의 개인들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는 국내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세계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관심이 가는 주제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북한 주민과 직접적인 접촉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남한과 북한 주민을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

서울대 연구팀은 북한과 남한을 직접 비교하는 대신, 남한에 거주하고 있는 북한 이탈 주민과 남한 태생 주민을 비교 연구함으로써, 남한과 북한의 차이를 간접적으로 유추해보고자 하였다. 북한 이탈 주민이 다양한 이유에서 북한을 떠나 남한을 선택해 온 사람들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만약 이들과 남한 주민들 사이에 어떤 차이가 나타난다면 실제로 북한과 남한 사람들의 차이는 더 클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서울대 연구팀은 시장경제 및 민주주의 가치관에 대한 설문조사를 시행하였다. 그 결과에 따르면, 남한 태생 주민에 비해 북한 이탈 주민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상대적으로 덜 지지하는 것으로 나왔다. 북한 이탈 주민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제도인 사적 소유권, 경쟁, 다당제에 대해 남한 태생 주민보다 덜 호의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연구팀은 사회경제 인식에 대한 설문조사 외에 북한 이탈 주민과 남한 태생 주민을 대상으로 소득이 주어질 경우 어떻게 상대방과 나누는지, 나눔의 태도(giving attitude)에 관한 경제학 의사결정 실험을 수행했다. 그 결과, 북한 이탈 주민은 남한 주민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50 대 50이라는 동일 배분을 선호하는 유형이 많은 것으로 나왔다.

서울대 연구팀은 또 일부 북한 이탈 주민을 2년 사이에 2번에 걸쳐 연구 조사하였는데, 그들의 가치관과 의사결정 실험에서의 행동이 2년 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런 연구 결과들은 개인의 선호와 가치관이 살아온 제도에 깊이 뿌리 박혀 있고,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함의(含意)가 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다. 북한 이탈 주민이 북한을 떠나 남한을 선택했지만, 우리 사회에서 사회·정치·경제 제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 사회의 제도를 따르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이를 조속히 해소하는 것이 북한 이탈 주민의 남한사회 적응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통일 한국의 정치사회 통합과 안정을 위해서도 북한 이탈 주민과 남한 태생 주민 간의 이질성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한 학자들의 부단한 연구와 그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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