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지금] 독일의 변화된 안보상황과 대응방향

입력 2016-08-29 13:05 수정 2018-02-0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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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주 세르비아 대사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동서독 통일, 동구권 국가들의 민주화와 소련연방 해체로 동서 냉전은 종료되고, 유럽에 드디어 장기적인 평화와 번영이 도래하는 듯했다. 소련과 동구권 국가들의 안보기구인 바르샤바 조약 기구는 해체되고, 북쪽의 발트 3국부터 남쪽의 루마니아까지 동구권 국가들은 서방 측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럽연합(EU)에 가입했다.

동서 냉전 시 최전방국가였던 독일은 동쪽에 새로운 NATO 회원국이자 EU 회원국인 여러 나라들을 이웃으로 하며, 경제적 중심은 물론 정치적, 지리적으로도 명실공히 유럽의 중심 국가로 부상했다. 지난 25년여간 통일에 따른 경제적, 사회적 후유증과 일부 EU 회원국의 재정위기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안보위협은 사라진 듯했다.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독일군은 대폭 축소되고, 군대 복무기간은 점차 축소되더니 2011년에는 징병제를 모병제로 변경했다. 내부의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의 구조와 규모도 축소되었다.

그러나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우크라이나 내전으로 유럽의 안보상황에 빨간불이 켜졌다. 러시아 인근 국가인 발트 3국과 폴란드는 물론, 유럽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평화가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독일 사람들에게도 전쟁 발발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왔다. 이슬람국가(IS) 테러와 중동지역의 내전 확산을 독일의 안보와 무관하게 여겼던 일반인들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독일에 2014년 약 20만 명의 난민이 유입한 후 2015년엔 110만 명의 난민이 유입했다. IS에 의한 끔찍한 테러가 옆 나라 프랑스에 여러 번 발생해도 독일은 안전하다고 믿고 싶어 했다. 그러나 2016년 7월 18일 독일 바이에른 지역 부르츠부르크 열차 도끼 만행사건, 7월 22일 뮌헨 쇼핑센터 무차별 사살사건, 7월 24일 안스바흐 음악 페스티벌 자살 폭탄사건 등 수많은 사상자를 낸 테러사건은 독일 사회를 충격에 빠트렸다. 더구나 테러를 저지른 범인들이 IS와 연계된 젊은 난민 출신임이 밝혀지자 독일 사회는 경악했다. 현재 독일 체류 난민 중 약 20만 명은 소재 파악이 어려운 상태라고 한다. 이들은 쉽게 범죄에 연루되거나 IS에 포섭될 수 있는 대상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2015년 7월 중순 TV 토크쇼 생방송에 출연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방청석에 앉았던 팔레스타인 난민 출신 소녀가 “가족과 함께 독일에서 추방될 위기에 놓였는데, 선처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하자, “누구나 독일에 체류할 수는 없다”라고 답변했다. 소녀는 방송 중 울음을 터트렸고 냉정한 총리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이렇듯 원칙을 고수하고 냉철했던 메르켈 총리가 난민의 독일 대량 유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장본인이 되었다. 2015년 8월 26일 헝가리에서 오스트리아로 가는 도로변에 세워진 냉동차에서 질식한 71구의 난민 시신이 발견되고, 며칠 후 터키 해변에 얼굴을 묻은 채 발견된 시리아 난민 꼬마의 시신은 국내외 여론을 들끓게 했다.

EU의 ‘더블린 협약’에 따라 난민이 처음 도착한 국가가 신상을 파악하고 우선적 조치를 취해야 하는 입장에 처한 헝가리는 몰려오는 난민에 대응할 능력이 없다며, 세르비아와의 국경을 폐쇄하고 오스트리아로 가는 열차 운행을 중단시켰다. 부다페스트 역에는 발이 묶인 수만 명의 난민이 노숙하고 있었고, 2015년 9월 4일 언론을 동반한 수천 명의 난민이 독일로 가기 위해 오스트리아를 향한 고속도로에서 도보행진을 시작했다. 헝가리와 오스트리아는 폭력적인 공권력 행사 없이는 난민들을 해산할 수 없는 비상상황에 처했고, 메르켈 총리는 시리아 출신 난민들을 ‘더블린 협약’과 무관하게 무조건 독일로 받아들인다는 정치적 결단을 내렸다. 이 결정은 아마도 훗날 메르켈의 총리 재직 기간 중 가장 중요한 정치적 결정으로 평가될 것이라고 혹자들은 말한다. 그날 헝가리 정부는 버스 100대를 동원했고, 오스트리아는 특별 열차를 마련했다. 난민들은 9월 5일 뮌헨 역에 도착했다.

당시 메르켈 총리가 난민 문제와 관련해 “우리는 해낼 수 있다(Wir schaffen das)”고 한 발언은 더 많은 난민들이 독일로 향하는 계기가 되었고, 1년이 지난 지금은 그 발언이 메르켈 총리의 정치행보에 발목을 잡고 있다. 갑작스러운 수많은 난민 유입에 사회적, 경제적 변화를 두려워하는 다수 국민들의 우려가 뒤따랐다. 독일 내 극우파들은 난민들에 대한 공격과 난민 숙소에 대한 방화로 사회적 불안과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우파와 좌파 간의 대결과 폭력적 시위도 증가했다.

나아가 난민들에 의한 절도, 강도, 폭력 사건이 빈번해졌고, 2015년 12월 31일 밤 쾰른 대성당 앞에서 북아프리카 난민 출신 1000여 명이 저지른 강도사건과 성폭력은 난민 정책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증폭시키는 전환점이 되었다. 메르켈 총리에 대한 지지도는 계속 하락하고, ‘우리는 해낼 수 없다’라는 구호를 외치는 극우파 정당에 대한 지지도는 상승하고 있다.

특히 2013년 창당한 ‘독일을 위한 대안’ (Alternative für Deutschland, AfD) 이라는 민족적이고 반EU적인 극우파 정당은 2014년 이후 현재까지 실시된 모든 선거에서 지지층을 확대하고 있다. 9월 4일 실시될 메르켈 총리의 지역구가 포함된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 의회 선거와 9월 18일 실시될 베를린 주 의회 선거에서 AfD는 두 자리 수의 지지율로 주 의회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추세는 독일의 정치 판도를 바꾸고, 특히 2017년 가을에 실시될 연방하원 총선에서 보수정당인 메르켈 총리의 집권 여당에 큰 위협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중도층이 극우 쪽을 향해 이탈하고 있다.

최근 독일의 안보상황 변화에 따른 정부의 대책이 다방면으로 추진되고 있다. 독일 남부지역의 테러 발생 직후인 7월 28일 메르켈 총리는 언론 회견을 통해 ‘안보대책 9개 항목’을 발표했다. △난민 중 극단적 행동을 보이는 자에 대한 경고정보 신속 전달 △안보 관련 분야 인력 보충, 기술 지원 강화 △안보 관련 인터넷 정보 확인가능 제도 확장 △경찰과 군대의 반테러 합동 훈련이 가능토록 법 개정(*현재 국내 치안 문제에 군대 개입 불가능) △이슬람 테러 및 극단주의자 관련 연구 지원 강화 △EU 회원국 간 정보 공유 네트워크 구축 △인터넷을 통한 무기 구입 불가토록 EU 법률 제정 추진 △우방국과 테러 관련 정보 교류 강화 △송환 대상 난민에 대한 송환 절차 축소 등이다.

8월 19일 기독민주당(CDU) 출신 각 주의 내무장관들은 소위 ‘베를린 성명’을 통해, IS와 연계된 외국인의 이중 국적 취소, 무슬림 여성들의 공공장소 부르카 착용 금지, 변화된 안보상황에 따른 경찰 인력 15000명 증원 등을 촉구했다. 경찰 인력 부족으로 최근 부쩍 늘어난 절도, 강도 사건은 제대로 대응치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시민들의 불만과 불안 증가와 함께 사회의 극우화 추세도 증대되고 있다.

8월 24일 독일 연방정부는 각의에서 지난 1995년 이후 변화된 안보상황에 대응하는 새로운 ‘국민보호대책안’(Zivilschutzkonzept)을 확정했다. 주요 목적은 전쟁과 재해 시 국민을 보호하고, 물, 전기, 가스, 식량 등 기본 생필품을 확보하며 국가와 정부기관의 기능을 유지하는 것이다. 70페이지에 달하는 세부내용은 위기 시 국민 보호부터 문화재 보존까지 다양하다. △주요 안보 위험 요소인 생물, 화학, 핵무기 공격과 사이버 공격에 대비 △국민 스스로 신변을 보호할 수 있도록 경고 전달제도 강화(방송, TV, 인터넷, SNS 등을 통한 경고) △긴급 상황 대비 정부는 물과 기초식량 비축 확보 △국민 각자의 비상식품 비축 권고: 5일간 버틸 수 있는 물과 식량(1인당 하루 물 2ℓ와 곡물, 야채, 우유 등 생필품 비축) △비상시 국가 운영과 정보통신이 가능토록 비상 전력과 비상 공간 확보 △인프라 보호 강화: 수자원, 전력, 가스 기관 보호, 현금 및 기름 확보 △비상시 군대 제도를 징병제로 환원 가능 등이다.

주요 내용 중 2011년 모병제로 변경한 군대 제도를 비상시 징병제로 환원 가능하다는 것에 대해선 앞으로 많은 토론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야당 측은 정부가 국민에게 과대한 위기의식을 조장하고 있으며, 특히 발표시기가 내년 총선을 겨냥한 것이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2017년 총선의 주요 이슈에 ‘테러’와 ‘국제적 분쟁’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통일 후 평화가 보장되는 듯했던 독일에 안보 이슈가 다시 일상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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