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투자형 사모펀드가 중소기업 등에 대출을 할 수 있도록 새 지침이 마련되면서 기업의 자금조달 창구로 기능할지 관심이 주목된다. 기존에 사모부 대출펀드(PDF)에 투자하려는 국내 연기금 대부분이 해외로 나섰던 만큼 앞으로 관련 투자금이 국내로 유입될 것이란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23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전문투자형 사모펀드의 금전 대여 업무’ 가이드라인이 지난달 26일부터 시행됐다. 기존에 자본시장법상 사모펀드의 금전 대여 여부에 모호한 점이 있었던 것을 가이드라인을 통해 구체화시킨 것이다.
사모 대출펀드는 소수 기관투자가의 돈을 모아 기업에 대출하거나 고위험·고수익(하이일드) 회사채 등에 투자를 진행한다. 기업 지분에 투자하는 사모주식펀드(PEF)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낮을 수 있지만 손실 위험도 적다. 이에 안정적인 투자를 지향하는 연기금의 대안 투자처로 인기를 끌고 있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83조에서는 원칙적으로 집합투자업자가 집합투자 재산을 운용할 때 금전 차입을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동법 제249조의 8에서는 전문투자형 사모집합투자기구에 특례를 적용해 금전 차입 규정을 배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재도 법상으로는 사모펀드의 대여·차입이 가능하지만 제대로 된 지침이 없는 상황이다. 이에 국내 운용사들은 자칫 법을 위반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출펀드 부문에 거의 나서지 않는 상황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PDF 활성화를 위해 운용사들이 지켜야 할 몇 가지 원칙을 정한 가이드라인을 시행했다”며 “그간 업계에서 모호하게 여겼던 부분이 정리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가이드라인에서 금융위는 사모펀드의 금전 대여 대상을 기관투자자로 한정했다. 차주에서 개인을 배제한 것이다. 또한 사모펀드에서 금전 대여를 할 때 대여금액이 펀드에서 차지하는 비중 등을 집합투자규약에 기재하도록 정했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이 내년 7월까지 한시적으로 시행되기 때문에 계속성 면에서 불안감은 여전히 있다”며 “그러나 앞으로 제도가 더 확고하게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하는 만큼 PDF 상품을 내놓는 국내 운용사가 점점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국내 연기금도 PDF 투자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대부분 해외 운용사에 자금을 맡기는 상황이다. 공무원연금은 지난해 10월 약 800억 원 규모의 PDF 투자처를 물색하면서 미국계 운용사인 아레스와 알센트라를 위탁업체로 선정했다. 공무원연금은 이들 위탁운용사를 통해 독일과 프랑스 소재 중견기업들에 인수·합병(M&A) 자금 등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게 된다.
6월에는 행정공제회와 경찰공제회가 PDF 투자에 나섰다. 행정공제회는 PDF 투자 사상 최대 규모인 1억 달러(약 1126억 원) 투자를 결정하고 미국계 운용사 BSP, 밥슨과 유럽계 운용사 파미라 등 3곳을 선정했다. 경찰공제회는 400억 원 투자를 목표로 운용사 2곳 선정을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다. 지난달 진행한 대체 출자사 입찰에 운용사 20여 곳이 몰려 10 대 1의 경쟁률을 보이기도 했다. 사학연금도 앞으로 부동산펀드, PDF 등 대체투자 비중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국내 전문 사모 운용사들이 PDF 부문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면 해외로 빠져나갔던 연기금 자금이 다시 유입될 계기가 될 것”이라며 “수익률과 안정성 측면에서 모두 만족스러운 국내 중소기업을 발굴해 유럽과 미국 등 큰 시장에 있는 연기금을 불러들이는 것이 운용사들의 과제”라고 설명했다.
한편 PDF는 신용등급이 낮아 회사채 발행이 힘들거나 자금조달이 어려운 기업들에 새로운 자금 조달처로도 기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은행의 여신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회사이더라도 대출형 사모펀드에서는 기업 고유의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일반 PEF보다 PDF는 자금 회수 기간이 짧아 투자자 입장에서도 유리하다”며 “정부가 회사채 활성화를 위해 내놓은 방안 중 하나인 만큼 기업에도 자금이 돌아가 좋은 수익률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