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 아실 드뷔시는 1862년 8월 22일 프랑스 파리 근교의 생제르맹 앙 레에서 도자기점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재봉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내성적이고 겁 많은 성격이었지만 일곱 살 때 배우기 시작한 피아노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덕분에 유력 인사의 지원으로 1872년 파리음악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는 여기에서 프랑스 작곡가 세자르 프랑크, 미국 출신 프랑스 작곡가 에르네스트 기로과와 함께 공부했다. ‘전람회의 그림’으로 유명한 러시아 음악가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의 작품에 큰 영감을 받기도 했다. 1883년 칸타타 ‘전투사’로 ‘로마대상’ 2등, 1884년 칸타타 형식의 ‘탕자’로 1등 상을 받았다. 1874년엔 파리음악원을 졸업했다.
그는 1887년부터 프랑스 인상파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의 살롱에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상징파 시인 및 인상파 화가와 교류했다. 자연히 인상주의 음악과 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말라르메 시에 곡을 붙인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은 드뷔시의 대표적 인상파 풍의 작품이다.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에서는 이런 경향이 더 짙어졌다.
1899년 로잘리 텍시에와 혼인했지만 1904년 엠마 바르닥과 사랑에 빠져 아내를 버리고 바르닥과 재혼했다. 드뷔시와 바르닥 사이에 딸 클로드-엠마가 태어나자 드뷔시는 1908년 딸에게 피아노 소품 ‘어린이 차지’를 지어줬다.
그는 1918년 3월 25일 암으로 죽었다. 파리 동부 페르라세즈 공동묘지에 묻혔다가 후에 지금의 파리 묘지로 이장됐다. “드뷔시의 음악에는 세기말이라는 시대가 지닌 퇴폐적이고 권태적인 분위기가 녹아 있다.” 일본의 예술·사회평론가 모리모토 마유미(森本眞由美)가 ‘에피소드로 엮은 클래식 음악 100’에서 드뷔시를 평한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