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은 1821년 8월 21일 태어나 1846년 9월 16일 순교한 천주교 성인이다. 영세명 안드레아. “그는 뿌리 깊은 유교 사상과 대원군의 쇄국 정책으로 천주교가 박해받던 조선 말기에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천주교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한국 최초의 신부가 되었다. 그리고 신앙의 자유를 위해 싸우다 교수형을 받고 순교했다.”(아동문학가 박경선 ‘김대건’).
충남 당진의 천주교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증조부가 오랜 옥살이 끝에 순교한 뒤 할아버지가 경기 용인시 내사면 남곡리로 피신함에 따라 그곳에서 성장했다. 증조부에 이어 아버지도 기해박해 때 순교했다.
그는 1836년 한국에 온 최초의 서양(프랑스) 신부 모방에게서 영세를 받고 예비신학생으로 뽑혔다. 이어 마카오로 가 파리외방전교회에서 서양식 중등교육 및 신학 과정을 이수한 뒤 1842년 조선교구장 페레올 주교의 지시에 따라 동북국경을 이용하는 잠입로를 개척하고자 나섰다. 하지만 사정이 좋지 않아 포기했다.
2년 뒤 부제(副祭)가 된 그는 다음 해 서북국경을 통해 몰래 조선에 들어와 서울에 정착, 모진 박해로 타격받은 교회를 재정비했다. 1845년 다시 상하이(上海)로 건너가 완당(萬堂) 신학교교회에서 페레올의 집전으로 사제 서품을 받고 한국 최초의 신부가 됐다. 같은 해 서울에 돌아와 왕성하게 선교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1846년 서양 성직자들의 해상 잠입로를 개척하다가 황해도 강령군 순위도에서 체포됐다. 그는 문초 과정에서 천주교 신부임이 드러나 새남터에서 처형됐다. 이때 겨우 25세였다. 그의 시신은 교인들이 몰래 거둬 경기 안성군 양성면 미산리에 안장했다. 이곳이 미리내성지다. 김대건안드레아는 1925년 교황 비오11세에 의해 복자로, 1984년에는 내한한 교황 요한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으로 선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