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지금] 수교 24주년 한·중관계, 구조적 취약성 직시해야

입력 2016-08-17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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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교 24주년을 맞은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중대한 기로에 직면했다. 작년 말까지도 ‘역대 최상의 관계’ 임을 과시했던 양국 관계인지라 지금의 대치 국면이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한·중 관계는 1992년 수교 이후 몇 차례 고비를 맞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특히 2015년 3월 한국은 중국이 주도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가입했고, 그해 9월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70주년 행사에 참석했으며, 12월에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비준되면서 대미를 장식하였다.

2013년 거의 동시에 취임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박근혜 대통령 간의 긴밀한 관계가 양국 관계의 발전을 이끌어왔다. 지금까지 7회에 걸친 정상회담이 이를 잘 보여준다.

한·중 관계는 때로 기복도 있었지만 지금처럼 한 정부에서 롤러코스터를 탄 듯 급격한 변화를 보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번에 양국 관계가 악화된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문제다. 그러나 한·중 관계의 외형적인 비약적 발전의 이면에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들이 누적돼 있다. 한·중이 작금의 도전을 새로운 발전의 계기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양국 관계에 드리워진 구조적인 문제들에 대한 냉철한 이해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

첫째, 양국 관계 진전이 ‘역대 최상의 우호관계’와 ‘중국경사론’으로 서로 상충된 의미로 해석되었던 것 자체가 양국 관계가 직면한 구조적 취약성의 현실을 방증해준다. 한국은 중국과 최상의 관계를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최상의 한·중 관계’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우려와 경계를 해소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하는 모순적 상황에 직면해 있다.

2010년 이후 단기간에 이루어진 다양한 구조적 변화들, 예컨대 중국의 가파른 부상,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 북한의 연이은 도발, 중·일, 한·일 등 역내 국가 간 역사 및 해양 영유권 갈등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면서 지정학적 특수성을 지닌 한반도와 한·중 관계에 중첩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비록 한·중 관계는 발전했지만 동시에 복잡하고 난해한 관계로 변화해왔다.

미국은 한국 등 아시아 동맹국을 동원해 중국을 견제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의 자국에 대한 견제에 동참하는 것을 저지하고자 자신의 세력권을 확장시켜가는 ‘대리 경합’의 동학이 심화하고 있다. 그 결과 중국에 있어서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는 증대하고 있지만 오히려 한국의 독자적 입지와 위상은 위축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미·중 관계의 맥락에서 한·중 관계는 다시 긴장 국면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반면에 중국 산업의 고도화, 내수 중심 성장으로의 전환, 그리고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서진전략[一帶一路]’ 등으로 인해 기존의 한·중 관계 발전에 주요한 동인이었던 한국의 경제적 가치와 입지는 새로운 변혁의 기로에서 약화 내지 모호화되고 있다.

둘째, 한·중 관계 발전의 이면에는 상호 동상이몽적 전략 가치에 대한 자의적 판단과 그에 따른 ‘과잉기대’ 및 ‘착시’가 광범위하게 자리하고 있다. 시진핑 정부는 한국이 최소한 미·일 동맹의 자국 견제에 동참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하에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재인식하고 한국에 적극적인 외교를 펼쳤다. 반면에 한국은 중국과의 경제 협력, 그리고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통일 환경 조성에 있어 중국의 적극적인 협력과 역할을 기대하고 있었다. 이러한 양국의 동상이몽의 현실은 2015년 1월 북한 핵실험으로 인해 수면 위로 노출되었고, 양국 관계의 취약성도 드러나게 되었다. 한국은 AIIB 가입, 전승절 기념 행사 참석, 한·중 FTA 비준 등 외견상 중국이 요청하고 기대했던 것에 ‘응답’했기 때문에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적극적 역할이라는 ‘보답’을 한껏 기대했다.

반면에 중국은 북한 4차 핵실험 이후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과의 연계를 통한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움직임을 ‘아태지역의 작은 나토(亞太小北約)’라는 프레임을 통해 우려와 경계를 표출했다. 즉 중국은 미국이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빌미로 한·미·일 안보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이를 통해 자국을 견제하려 한다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한국이 사드 배치를 결정한 것이 한·미·일 안보 협력 추진의 신호탄이라고 해석하며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사드 해법을 둘러싸고도 여전히 이러한 ‘희망적 기대’가 남아 있다. 한·중 양국 정부 모두가 사드 이슈로 인해 양국 정상이 쌓아올린 ‘공든 탑’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당위적 희망을 갖고 있다. 중국에서는 한국이 ‘최종적으로 사드 배치를 강행하지는 않을 수 있다’는 일말의 기대감을 갖고 있고, 한국 역시 ‘중국이 설마 우리에게 보복 조치를 강행하겠는가’라는 희망적 해석이 자리하고 있다. 양국이 공히 자기중심적 기대 또는 희망을 지니고 있지만 이는 상호 상충적이며 결과적으로는 어느 한쪽의 큰 실망과 충격을 가져다 줄 개연성을 안고 있다.

마지막으로 양국 정부는 양국 관계의 ‘내실화’를 강조하면서 다양한 대화 채널이 구축되었음을 중요한 외교적 성과로 자랑해왔다. 그러나 사드 사태는 양국 간 갈등이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하는 기제로 작동할 수 있는 대화 채널의 제도화가 여전히 미비한 현실임을 고스란히 노출하였다. 예컨대 양국 정상 회담은 이미 상호 방문을 포함하여 일곱 차례나 이루어진 반면에 한·중 관계의 전략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소통 채널로 구축된 고위급 전략대화는 상견례만 하고 사실상 휴업 상태에 있다. 양국 정상의 긴밀한 유대와 정상회담 중심의 양국 관계를 국가 차원으로 발전, 제도화시키지 못한 것이다. 정권이 교체되어도 지속될 수 있는 갈등 관리를 위한 정례화된 대화 채널이 구축되어야 하는데도 말이다.

사드 문제는 결국 미·중의 세력 경쟁, 한·중 관계의 구조적 취약성, 북핵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중대한 전략적 이슈다. 향후 한국 외교는 제2, 제3의 사드 이슈에 직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향후 미·중 간 대리경쟁 구도는 가열되고, 한국은 원치 않는 선택의 딜레마에 빠지는 상황이 더욱 빈번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한국 외교는 오히려 국내 정치에 종속되거나 동원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그에 따라 외교의 주 내용이 현실 분석과 전략 구상에 집중되지 않고 홍보와 언론 플레이에 더 치중해 있다. 한국 외교가 그 어느 때보다도 복잡한 정세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전략적 고민이 필요한 중요한 시점에 직면해 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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