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인으로 알려진 민유성 회장의 직함이다. 지난해 ‘롯데가(家) 장남의 입’을 자처하면서 고문으로 불렸고, 최근 대우조선 경영 비리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전 산업은행장’이란 직함이 통용되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1년 사이 ‘고문과 회장’으로 직함을 달리하며 언론의 정치·경제·사회면 보도의 중심이 됐다.
기자가 민 회장을 처음 마주한 것은 지난해 10월이다.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을 대동하고 기자회견을 개최한 직후였다. 서울 모처에서 만난 그는 거침없는 입담으로 롯데가 형제분쟁의 전말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신 전 부회장의 개인 성품과 관련해서는 특별하다 싶을 정도로 친절한 해석이 뒤를 이었다. 당시 기자는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과 더불어 대우조선 경영 부실에 대한 민 회장의 입장도 확인하고 싶었다. 그는 “(대우조선과 관련해) 이래저래 할 말이 참 많은 회사다. 홍기택 회장이 머리가 아플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만 던졌다.
이후 취재상 필요할 때 간헐적으로 통화가 이뤄졌고, 그를 다시 마주한 것은 신 전 부회장을 대동하고 언론사 순방이 진행됐을 때다. 다소 소극적인 신 전 부회장을 대변하듯 민 회장의 발언에는 힘과 당당함이 묻어났다. 정의를 넘어 우정으로 포장된 그의 발언에는 적어도 진실함이 묻어나 보였다. 신동빈 회장이 아버지와 형을 배신하고 경영권을 찬탈했다는 분노가 어느새 그를 롯데가(家) 일원으로 포함시키는 듯 보였다.
이 때문일까. 이후 ‘그가 왜?’ 롯데가(家) 경영권 분쟁의 중심에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갖가지 명분을 앞세운 정의와 우정, 공명심이란 그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설득력이 없다. 그렇다고 단순하게 ‘돈과 권력’이라는 선택의 갈림에서 그를 판단하면 될 것인가.
검찰이 지난 5월 대우조선 경영비리를 본격적으로 수사하자 민 회장은 갑자기 대외 행보를 자제하고 두문불출 칩거에 들어갔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간담회를 주재하고 기자들과 만나 신 전 부회장의 입장을 상세히 전하던 그였다. 최근에는 기자들의 전화도 피한 채 잠행 중이다.
기자는 대우조선 경영비리에서 민 회장의 이름이 처음 언급된 N홍보대행사와의 유착관계와 관련해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이와 관련된 내막은 본지가 6월 29일 1면에 보도한 ‘檢, 남상태 연임로비 정황 포착… 홍보 대행사 통해 정·관계 로비’ 기사에 자세히 나와 있다.
재계에서는 롯데를 겨냥한 검찰수사의 결정적인 제보자로 민 회장을 지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경영권 분쟁 이후 롯데와 관련한 첩보가 들어왔다”고 설명하지만, 민 회장이 주도적으로 롯데 의혹을 제보했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결국, 모든 논란의 중심에 있는 민 회장의 명분과 행보 하나하나가 여전히 미스터리다. 다만 정의보다는 돈·명예·권력을 다 쥐려는 ‘천민 엘리트’ 의식이 깔려 있다는 사실만은 확인할 수 있다. 금융권에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달변가로 통하는 민 회장이다. 앞으로 민 회장이 검찰 수사의 ‘출구(Exit) 전략’을 어떻게 짤지 그 또한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