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만료 신약 시장에서 오리지널 의약품이 복제약(제네릭) 제품을 따라하는 역전 현상이 늘고 있다. 국내제약사들이 오리지널 의약품을 그대로 본뜬 제품을 내놓는 것에서 벗어나 축적된 합성 기술을 토대로 진화된 제네릭을 먼저 내놓으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15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사노피아벤티스는 이달부터 항혈전제 ‘플라빅스에이’의 건강보험 급여를 등재받고 판매를 시작했다. 플라빅스에이는 급성관상동맥증후군 환자의 죽상동맥경화성 증상의 개선 등에 사용되는 약물로 항혈전제로 가장 많이 처방되는 ‘클로피도그렐’과 ‘아스피린’이 결합된 복합제다.
사실 국내에서 ‘클로피도그렐+아스피린’ 복합제는 사노피아벤티스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1년 CJ헬스케어의 ‘클로스원’을 시작으로 한국유나이티드제약, 제일약품, 휴온스, 종근당, 광동제약 등 14곳이 동일한 조합의 복합제를 허가받았다. 오리지널 의약품을 보유한 업체가 자사 제품을 활용한 후속약물 발매는 제네릭 업체를 뒤따라간 모양새가 됐다.
CJ헬스케어의 클로스원은 올해 상반기에만 24억원의 원외 처방실적을 올리며 간판 의약품으로 자리잡고 있다. 사노피아벤티스가 플라빅스에이의 보험약가를 동일 성분 제품 중 가장 낮은 1158원으로 책정한 배경도 시장에 뒤늦게 뛰어든 후발주자 입장에서 저렴한 약가로 이미 구축된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동아에스티는 지난해 10월 간판 천연물신약 ‘스티렌’의 복용 횟수를 1일 3회에서 1일 2회로 줄인 ‘스티렌투엑스’를 허가받았다. 스티렌이 특허만료 이후 90여개 제네릭으로부터 집중 견제를 받자 복용 횟수를 줄이고 약값 부담을 낮춘 약물을 내놓으며 시장을 방어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이미 시장에선 스티렌투엑스와 유사한 제품이 발매된 상태였다. 동아에스티보다 4달 앞선 지난해 6월 대원제약이 1일 2회 복용하는 ‘오티렌F’를 허가받았다. 대원제약은 자체 개발한 위장내 약물의 플로팅(Floating) 특허기술을 적용해 오티렌F를 오리지널보다 빨리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오티렌F는 올해 상반기 39억원의 원외 처방실적을 기록하며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종근당, 유영제약, 안국약품, 제일약품 등도 대원제약으로부터 오티렌F를 공급받고 제품명만 바꿔 판매 중이다.
지난 2012년 화이자의 발기부전치료제 ‘비아그라’의 특허가 만료되자 국내업체들은 비아그라와 똑같은 알약 모양의 제네릭 뿐만 아니라 물 없이 복용하는 필름형, 가루형, 츄정 등 다양한 제형의 제네릭을 쏟아냈다. 화이자는 비아그라의 시장 점유율이 위축되자 국내 중소제약사 서울제약이 만든 필름형 비아그라 제네릭을 가져다 ‘비아그라엘’이라는 상표명으로 팔기 시작했다.
화이자는 지난 2006년부터 소염진통제 ‘쎄레브렉스’ 200mg 용량만 팔아오다 지난해 11월부터 100mg 저용량을 발매했다. 2006년 이미 저용량 제품의 허가를 받았음에도 고용량만 판매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쎄레브렉스의 특허 만료 이후 종근당, 한미약품, 삼진제약 등이 100mg 저용량을 내놓자 화이자도 뒤따라 저용량을 내놓으며 시장 방어에 나섰다. 저용량은 제네릭 제품의 발매가 한발 빠른 셈이다.
노바티스의 백혈병치료제 ‘글리벡’은 100mg 1개의 용량만 있지만 종근당, 동아에스티, 일동제약 등 제네릭 업체들은 200mg, 400mg 용량도 추가하며 글리벡 시장 공세를 강화한 상태다.
제약사 한 관계자는 “기존에는 제네릭 제품들은 단순히 오리지널 의약품과 똑같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처방을 유도했지만 최근에는 자체적으로 구축한 합성 기술을 바탕으로 기존 제품이 갖추지 못한 진화된 제품을 먼저 개발,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이 확산되는 추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