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와 이범수는 역시 훌륭한 배우다. ‘인천상륙작전’에서 보여준 연기는 거의 완벽했고 메소드 연기로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정재는 선한 역과 악역 둘 다 어울리는 영화계의 몇 안 되는 배우다.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윤혜린(고현정분)의 보디가드 역할로 연기를 시작한 이후 멜로와 액션을 오가며 탄탄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 냈다. 이번 영화에서도 해군 첩보대위 장학수 역할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연기력이다. 이범수와는 영화 ‘태양은 없다’에서 맞닥뜨린 이후 근 20년 만에 한 프레임에서 두 사람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범수는 인민군 인천 방위사령부의 책임자 림계진으로 열연한다. 그런데 엉뚱한 생각이 드는 게 이 둘의 역할을 바꿔서 연기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기존 배우의 이미지를 전복시키는 것도 재미있고 전형적으로 흐를 수 있는 선악의 스토리를 희석해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한국영화는 ‘공산당은 싫어요’류의 반공 이데올로기 일변도에서 벗어나 상당한 진전을 거둬왔다. ‘웰컴 투 동막골’이나 ‘공동경비구역 JSA’는 인간의 얼굴을 한 인민군으로 진화했고 민족 공동체로서 한 핏줄임을 환기시켰다.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북한군으로 나왔던 송강호는 “김광석은 왜 그리 빨리 죽었대” 하며 오지랖 넓게 한국의 대중문화에 간섭까지 한다. 이런 장면을 통해 서로 말이 통할 수 있고 얘기하다 보면 함께 살 수도 있겠구나 하는 희망적 전망을 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천상륙작전’의 림계진은 교조적이고 기계적인 정통 인민 괴뢰군 장교의 모습만 보일 뿐이다.
제작사 대표인 정태원은 인천상륙작전이 유엔군과 맥아더 원수만의 공로로 성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국군이 인천에서 수행한 엑스레이 작전과 팔미도 등대의 점등 신호가 없었다면 성공 확률이 고작 5000분의 1이었던, 결코 성공할 수 없었던 작전이었음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결국 이 부분은 영화의 핵심으로 구성되어 보여준다.
영화의 전반부는 첩보영화 느낌으로 빠르게 진행된다. 애초에 미군으로 구성된 특공대는 언어의 장벽과 현지 침투의 어려움으로 한국 해군 특수부대로 임무가 옮겨졌고 7명으로 구성된 엑스레이 작전팀은 현지에서 정보 수집을 한다. 영화처럼 인민군으로 가장, 적진 깊숙이 침투해 임무를 수행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작전을 위한 다양한 정보 수집을 전개하며 현지 켈로부대와 연합해 전투를 치른다. 그런데 영화에서 다소 의아스러운 부분이 있다. 해군 특수부대의 첫 번째 임무는 기뢰 지도를 확보하는 것이나 실패하고 만다. 가까스로 현장을 탈출한 특수부대원들은 상륙을 위한 등대를 접수하라는 두 번째 임무를 부여받는다. 헌데 인천상륙 전 평양의 고위 대책회의에서 김일성에게 유엔군의 타격지가 바로 인천이 될 것임을 그렇게 강조했던 림계진이 해군 첩보부대의 공격을 받고도 상부에 보고해 대응을 준비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다. 첩보부대의 어뢰 지도 확보가 실패하면서 이미 유엔군의 타격 목표가 인천임이 공공연히 알려졌기 때문이다. 알았다면 북한군도 다른 어느 지역보다 더 방비에 힘을 썼을 것이다. 알고는 있었지만 설마 했다고?
실제로 북한은 인천상륙작전을 사전에 알지 못했을까? 영화에선 기뢰 배치도가 중요한 사건의 핵심이지만 나중에 알려진 사실은 북한은 인천 수로에 기뢰를 거의 설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상륙 후 유엔군 제10군단이 발견한 기뢰는 12개에 불과했다. 김일성은 소련 대사에게 해안 방어를 위한 무기 지원을 요청했으나 구체적인 대비는 하지 못한 것이다. 이를 통해 북한 수뇌부는 대규모의 인천상륙작전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관객들은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같은 전쟁 신의 웅장함과 압도적인 영상을 보길 원했다. 어느 누구도 표현하지 못했던 인천상륙작전의 규모를 오감으로 체험하길 바랐으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미 해군의 대규모 출병은 주로 타이트한 화면으로 보여줘 답답했고 항구의 폭격 장면은 관객 눈높이를 맞추기에 어설펐다. 영화 ‘포화속으로’에서 보여준 이재한 감독의 화려한 전투 장면 연출이 이번 영화에는 아쉽게도 백 퍼센트 발휘되지 못한 듯하다. 영화 ‘진주만’이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보여준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은 박진감 넘치는 대형 전투 신의 영상은 끝내 구현하지 못했다.
제작사는 리암 니슨이라는 훌륭한 배우를 데리고 왔다. 캐스팅까지 상당한 공이 들어간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런 명배우를 제대로 잘 활용했는지는 의문이다. 리암 니슨이 영화에 나오는 시간은 도합 20분 남짓. 긴장감이 감도는 전쟁의 한가운데서도 선문답 같은 잠언만을 반복적으로 읊조린다. 영화의 전체 흐름과 톤을 아쉽게도 명배우가 흐트러뜨린다. 맥아더 장군의 인간미를 볼 수 있는 장면은 어린 한국 병사를 만나 꼭 승리를 안겨주겠다고 약속하는 단 한 장면뿐이다. 작전 지원병인 장학수 대위와의 뜬금없는 만남 장면은 손발이 오그라들기도 했다. 이정재가 리암 니슨과 투 샷으로 꼭 함께 나오고 싶다고 요청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이야기의 전개상 꼭 있어야 할 장면으로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작전 후 마운트 매킨리함에서 전황을 살펴보던 맥아더가 실제로 말했던 “끝났군. 커피나 한잔 하세”나 월미도를 완전히 점령한 후 “해군과 해병이 오늘 아침보다 더 빛난 적은 없었다”라는 대사가 맥아더에게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현실의 맥아더는 아이젠하워가 되고 싶었다. 미국 대통령이 꿈이었다. 트루먼은 이런 맥아더를 견제했고 결국 맥아더는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속세를 떠났다. 가능성이 낮은 작전을 성공시켜 영웅이 되고자 했고, 중공군의 참전이 확실해지자 핵폭탄을 투하해 선제 공격을 하자고 주장한 그의 마음속에는 이런 정치적 야망에 자리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CJ그룹의 이재현 회장은 최근 재상고를 포기했다. 광복절 특사를 바란 거 아니냐는 추측성 기사가 흘러 나온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CJ E&M이 투자·배급했다. 영화판에서 CJ는 메이저 배급사이며 양질의 영화를 생산해내는 프로덕션이다. ‘인천상륙작전’은 작년 하반기에 시나리오가 나왔고, 올 3월에 제작이 완료돼 여느 다른 영화에 비해 빠른 속도로 관객들에게 선을 보였다. 호사가들이 회장의 특사를 바라고 멋진 반공영화 한 편 만든 것 아니냐는 입방아를 찧기도 한다. 그럴싸한 풍문이다.
끝으로 김영애의 어머니 역할은 항상 놀랍다. 김선아와 추성훈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